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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조지벤슨을 세계 최고로 만든 CEO

biumgonggan 2021. 6. 7. 11:00

CEO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 그리고 직원들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인간애 등이 아닐까요. 여기 이 모든 것을 갖춘, 마치 기업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CEO가 있습니다. 깁슨, 펜더 등 세계 최고 전자기타 브랜드와 어깨를 견주는 일본의 악기회사 후지겐의 창업자, 요코우치 유이치로가 그 주인공입니다.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7년, 20살이 된 요코우치에게는 악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농지 몰수를 피하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가업인 농사를 시작한 것인데요. 그러나 학업에 대한 미련이 크다 보니 농사일이 재미있기는 만무했습니다. 어떻게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일본에서 최고 매출을 올리는 영농인이 되겠다'라는 목표를 설정하죠. 그리고 결국 농작, 축산, 원예 등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며 일본 최고 매출 농업인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유망한 영농인으로 살아가던 요코우치는 어떻게 일본 최고의 악기회사를 이끄는 CEO가 될 수 있었을까요?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요코우치는 동경대 농학부에서 열리는 한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갑니다. '농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거니 잔뜩 기대하고 간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는 공업이 중요하니 젊은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말고 도시에 가서 일하라"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영농인의 한 사람으로 화가 치미는 와중에서도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바로 '도전'이라는 이름의 에너지였죠. 결국 그는 12년을 전념한 농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공업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연히 방에 놓여 있던 기타를 보고는 악기에 관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1960년 친구에게 소개 받은 사업가 미무라 유타카를 만나, 100만 엔의 자본금으로 클래식 기타 회사를 설립하고 미무라가 사장을, 요코우치가 전문직을 맡으며 후지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직원들과 밤낮 땀을 흘려가며 만들어진 기타 시제품을 들고 요코우치는 직접 악기 판매점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뛰기 시작했는데요. 기타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주문이 늘어났고, 후지겐은 성장해 나갑니다.

승승장구하던 후지겐, 어느 날 미국시장에 진출해보자는 미무라 사장의 제안에 요코우치는 달랑 기타 여덟 대와 500달러를 들고 뉴욕행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코우치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는 것이죠. 악기점마다 무작정 들어가 봤지만 약속시간 하나 못 잡고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햄버거 하나로 하루를 연명하며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의욕도 체력도 바닥나고 좌절감에 빠진 요코우치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백발의 신사가 다가와 왜 울고 있냐고 물어본 것이죠. "아이 돈 해브 비즈니스. 아이 돈 해브 컨버세이션."이라고 더듬더듬 대답하는 요코우치를 빤히 쳐다보던 노신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요코우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밤낮으로 요코우치에게 기초 회화를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보름 후, 다시 거리로 나온 요코우치는 첫 미팅을 잡아 300대의 주문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보스턴,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지로 돌아다니며 주문을 따냅니다. 그러던 중에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당시 재즈 기타의 신이라 불리던 조지 벤슨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때의 인연으로 후에 후지겐의 대표 브랜드가 되는 조지 벤슨이 탄생하게 되죠. 이 기타를 조지 벤슨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후지겐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후 5년, 전 세계 45개국에 사무소가 세워지고 일본 최고 기타 회사로 자리매김한 후지겐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1960년대 후반, 엔화가 급등하면서 수출이 크게 타격 입은 것이죠. 손해를 메우기 위해 미무라 사장은 침대, 테이블 등의 목공 제품 제작을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자금을 끌어들였고, 그것은 결국 후지겐에 막대한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업자의 무모한 사업 확장이 실패로 돌아가자, 전무이사였던 요코우치 유이치로는 물러난 사장 대신 후지겐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1969년 직접 사장직에 취임한 요코우치는 직원 한 사람도 감원하지 않고 회사를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니, 품질을 높여 기타 가격을 인상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박리다매로 만들어왔던 기타를 최고급 클래스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요코우치는 먼저 '세계 최고의 기타를 만들자'라는 기업 미션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제품이 최고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규모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의 급여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인상합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경영 악화로 불안해하던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고, 후지겐은 불과 1년 만에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는 데 성공합니다.

이 일로 요코우치는 기업의 책임감과 기업문화에 대해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들을 만들었는데요. 에티켓위원회, 인사위원회, 청소위원회, 급여위원회 등 그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사위원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인사를 합시다"라는 취지로 더 좋은 인사법을 연구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환경에서 후지겐의 직원들은 생기 있는 모습으로 성실히 일했고, 요코우치 역시 이에 화답했습니다. 쾌적한 공장 환경 조성, 직원 복지를 위한 후생관 건립, 단 한 명의 인원감축도 없는 평생직장 공표 등 인간 중심 경영을 펼쳤습니다. 회사를 도산 위기에서 살려내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직원들의 능력과 애사심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요코우치 회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 만들기입니다. 이 공장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그 훌륭한 사람들이 기타를 만드는 겁니다." 도전정신과 열정, 그리고 인간애를 모두 갖춘 요코우치 유이치로, 과연 CEO의 모범답안이자 오래도록 회자될 '전설의 CEO'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