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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수평적 리더형, 박지성 선수

biumgonggan 2021. 6. 4. 08:25

그라운드 안의 또 다른 리더인 ‘주장' ‘캡틴’에 관해 이야길 해볼까 합니다. 감독이 팀을 총괄하는 지휘자라면 주장은 팀을 한데 묶는 중심이자 선수들의 버팀목입니다. 물론 축구에서의 주장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축구 규칙에 따르면, 완장을 찬 주장의 공식적 역할은 경기 시작 전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 그리고 경기가 승부차기로 갈 경우 한 번 더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장의 역할이 과연 이것에 불과할까요? 그렇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주장들에게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을 화합시키고 고무시키는 모티베이터 역할이 부여됩니다. 또한, 필요한 경우 종종 감독을 대신하는 대변인, 지휘자의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물론 주장을 역임하는 선수들의 개인적 성향과 팀 문화에 따라 여러 유형의 주장이 존재하지요. 예를 들어 어떤 주장들은 매우 큰 목소리를 내면서 공격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는 반면, 어떤 주장들은 보다 세심하거나 자상하고, 어떤 주장들은 자신이 앞장서 본보기를 보이면서 권위를 획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감독은 팀 내 ‘에이스’ 선수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 축구 실력 순으로 주장을 선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유형의 주장이든지 간에, 축구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대한 팀에는 대부분 위대한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수비수의 정석 보비 무어, 서독 대표 팀과 바이에른 뮌헨 모두에서 놀라운 업적의 중심에 있었던 리베로의 대명사프란츠 베켄바워, 1986 월드컵을 원맨쇼로 지배하다시피 했던 아르헨티나의 주장 디에고 마라도나, AC밀란 황금기의 위대한 주장 계보를 이어갔던 프랑코 바레시파올로 말디니, 호나우지뉴부터 메시에 이르는 실로 화려한 바르셀로나 팀에서 심장 역할을 한 카를레스 푸욜,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미스터 카리스마로이 킨, 13년 간 모범적인 인터밀란 주장을 역임하며 결국 트레블을 이룩했던 하비에르 사네티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1998년 21세에 AS로마 주장 완장을 차고 2017년까지 이탈리아 리그 역대 최장 기간 주장을 역임했던 원 클럽 맨프란체스코 토티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렇게 많은 위대한 주장들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형 두 가지를 제시한다면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 형’과 ‘수평적 리더 형’입니다. 카리스마 형의 대표적인 표본은 누가 뭐래도 로이 킨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카리스마는 때로 지나치게 발현되어 과격한 파울이나 몸싸움을 일으키고, 심지어 자기 팀 감독의 뜻을 거스르는 상황까지 이른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고무시키고 각성시키는 킨의 능력을 의심하는 평론가는 없습니다. 킨은 팀에 문제가 발생할 때 동료들을 향한 호통과 질책을 서슴지 않으며 문제를 수정하려 드는 스타일이었죠. 몸값 비싼 스타 동료 선수들도 킨의 호통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에 대한 호통에 그치지 않고, 킨은 그라운드 내에서 엄청난 투지와 뛰어난 기량을 몸소 선보이며 쓰러지는 팀을 일으켜 세우는 스타일이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유벤투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벌인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입니다. 경기 시작 10분여 만에 불의의 2골을 허용해 탈락이 눈앞에 왔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캡틴 킨의 전설적인 활약에 힘입어 3-2 대역전승을 거두고 역사적인 트레블로 향하게 됩니다. 킨은 유벤투스가 자랑하는 지네딘 지단, 에드가 다비즈, 디디에 데샹의 중원을 상대로 놀라운 완승을 거두며 직접 추격골을 터뜨리기까지 했는데요, 이 날의 경기는 불요불굴의 주장 로이 킨을 상징하는 한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평적 리더형으로 들고 싶은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대한민국의 ‘캡틴 박’이었던 박지성 선수인데요. 박지성은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유형의 권위주의적 주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선배 말씀이 하늘”이라는 식의 수직적 리더십을 펼치고자 했던 과거형 캡틴들과는 달리 박지성은 후배들과 눈높이를 맞춰 자연스럽게 팀을 융화시키는 스타일이었죠. 캡틴 박이 주장을 맡던 시절, 한국 대표 팀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밝았습니다. 박지성은 식사 때마다 얘기를 나눌 후배들을 찾아다녔고, 후배들과 어울리며 고민을 듣고 농담하며 스스럼없이 지냈습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도 신나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요. 그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오버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조직의 비전을 공유하게끔 하는 주장이었습니다. 경기력에 있어서도 박지성은 로이 킨과 마찬가지로, 주장으로서 큰 경기, 결정적 상황에 팀을 구해내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이란과의 두 차례 승부에서 거짓말같이 모두 경기 막판 동점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 5월에는 월드컵을 앞둔 일본 대표 팀 출정식에서 환상적인 선제골을 기록한 후 '산책 세리머니'를 펼쳐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며 주장으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죠.

강렬한 카리스마와 수평적 리더십. 여러분은 과연 어떤 캡틴이 되고 싶으신가요? 그러나 로이 킨과 박지성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두 위대한 캡틴 모두가 근본적으로 솔선수범하는 사나이였다는 점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한 조직체에서 자신이 먼저 어려운 과업을 떠맡으며 솔선수범했기에, 그들의 강력한 카리스마나 수평적 리더십이 잘 작동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