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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트로이아 전쟁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의 선택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황금사과가 던져졌던 테티스 여신과 펠리아스의 결혼식으로 인해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혈통을 가진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피가 섞인 채로 태어났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은 그것이 마음에 내내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며 흐르는 스튁스 강으로 가서 갓 태어난 아킬레우스를 물에 담갔죠. 그 강물이 묻으면 인간도 불사신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물에 담그면서 발뒤꿈치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그곳엔 강물이 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 건’은 그의 유일한 약점이 되었죠. 요즘도 누군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릴 때, ‘아킬레우스의 건을 건드렸다’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후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리스 최고의 전사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가 장성한 시점에,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는 사건이 터지고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테티스 여신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하면 죽게 될 운명임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참전을 막으려고 했죠. 고심 끝에 그녀는 아킬레우스를 여장하게 하여 공주를 많이 낳은 스퀴로스의 왕 뤼코메데스의 궁전에 숨겼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오 뒷 세우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죠. 발각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테티스 여신은 아킬레우스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는 두 가지 운명의 길이 놓여 있단다. 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다면, 너는 전쟁터에서 일찍 죽을 운명이다. 그 대신 너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네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너는 건강하게 오래 편안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너는 불명의 명성을 얻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고심했습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전쟁터에 나가 일찍 죽는 것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는 하지만, 명성이 불멸한다고 해도 사람 목숨보다 더 귀하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첫 번째 길을 선택합니다. 모든 전사들이 참가하는 전쟁에서 겁쟁이처럼 비겁하게 빠지는 것은 사나이가, 여신의 아들인 영웅이 할 일은 아니라고 본 겁니다. 멋지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명예를 드높이고 찬란한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 길을 선택한 겁니다.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멋 내다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킬레우스는 언뜻 그런 말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여기에서 잠깐 그리스인의 가치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의 선택은 그의 사상과 품성에서 나와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사학>에서 세 가지 연설의 종류를 나누면서, 각 연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과거의 행적에 대한 법정연설과 관련된 것인데, 정의로운가 부정 의한가의 법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둘째는 미래의 정책과 법안을 결정하는 의회 연설인데, 주로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의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셋째는 어떤 인물이나 공동체를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연설인데, 그 기준이 아름다운가, 멋진가, 아니면 추하고 수치스러운 일인가라는 일종의 미학적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 마지막 기준은 명예로운 삶과 치욕스러운 삶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죠.
아킬레우스는 어떤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을 했을까요? 그는 전쟁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 용감하게 싸우는 길을 선택했는데,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멋짐, 명예로움의 기준, 미학적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한 겁니다. 사실 어느 사회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들 때문에 타락하기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그 자체로 멋있고 명예로운 선택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전체에게는 이익을 가져다주니까, 실리와 실용주의적 가치 기준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죠. 또한 전쟁을 피하지 않고 대의에 맞게 명분을 찾아 전쟁에 나가는 모습은 법과 정의의 원칙에도, 도덕과 법치의 관점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적어도 10년째 되는 해에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다투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공개 석상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하자, 아킬레우스는 자존심과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죠. 그가 전투에서 빠지자 전세가 급격하게 적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그리스 연합군은 패배를 거듭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원천적인 잘못은 아가멤논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예에만 집착하던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큰 화를 불러왔던 겁니다. 그리고 그 재앙의 정점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쓰러지게 되죠. 아킬레우스는 분노에 휩싸여 전장에 나가 헥토르를 무찌르고 최고의 전사로 빛났지만, 파트로 클로스를 되살릴 순 없었죠. 그가 빠지는 바람에 죽어갔던 수많은 동료들의 생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신도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의 화살가 쏜 화살에 그의 유일한 약점인 뒤꿈치, 아킬레우스의 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운명처럼 단명하고 불멸의 명성을 남겼으니,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요? 하지만 그가 분노를 억누르고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되, 친구와 동료의 생명과 공동체의 운명도 돌볼 수 있었다면, 그의 이름은 더욱더 빛나지 않았을까요?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전사, 아킬레우스를 보면서, 그를 위대한 영웅이라 기리면서도 마음 한편에 내내 안타까움이 감도는 것은 저만은 아닐 듯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