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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지속되던 전쟁에서 트로이아가 멸망한 것은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오 뒷 세우스가 세운 ‘트로이아 목마 작전’으로 전쟁의 결판이 났죠. 그리스군은 전쟁을 멈추고 귀향한 것처럼 꾸몄고, 트로이아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세워두었죠. 트로이아인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하며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며 즐기다 잠들었죠. 그러나 자정이 넘자 목마에 숨어있던 그리스 전사들이 내려왔고, 성문을 열자 근처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트로이아인들을 도륙했습니다. 불의의 공격에 트로이아인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갔죠. 이때 깨어나 그리스군들과 전투를 벌인 트로이아의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이네아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선택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이네아스도 다른 트로이아 사람들처럼 오뒷세우스의 작전에 속았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동료들과 즐기다 잠들었죠.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도성이 불타고 동료들이 그리스인들의 칼날에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칼을 들고 싸워야 할까?’ 그러나 그의 힘만으로는 트로이아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달아나려고 하지 않았죠.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지만 트로이아의 전사로서, 신의 아들로서, 왕족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칼을 빼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리스 군과 싸웠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아이네아스에게 아프로디테 여신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여기에 있느냐? 네가 트로이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지금 네 아버지는 무사하시냐? 네 아들과 네 아내는 어디에 있느냐?” 그 말에 아이네아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족들을 구하려고 집으로 달려갔죠. 그는 다리를 저는 아버지를 어깨에 올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 아내와 함께 트로이아를 빠져나갔습니다. 마침내 안전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도성을 빠져나온 트로이아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이네아스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죠. 트로이아를 구할 수 없다면 새로운 도시, 제2의 트로이아를 건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내를 구하러 트로이아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요? 그러나 그곳에 갔다간 아내를 찾기는커녕,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트로이아의 꿈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아내를 포기하고 최대한 빨리 트로이아를 떠나야 할까요?
아이네아스는 아내를 버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부부의 의리와 사랑을 저버리는 배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타는 도성 안으로 들어가 아내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갑자기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네아스는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충격과 슬픔에 빠집니다. 아내가 천상에서 아이네아스에게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낭군이여, 이렇게 미친 듯이 슬픔에 빠져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제가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을 제우스께서 허용하시지 않으시나 봐요. 이곳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세요. 저를 위해서라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우리의 아들을 잘 돌보아 주세요.” 결국 아이네아스는 아내를 포기하고, 다시 유민들이 모인 곳으로 갑니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을 억누르고 대의를 먼저 생각했던 겁니다. 현명하고 냉정한 판단이었을까요, 아니면 비겁한 배신이었을까요?
아이네아스는 동료들과 배에 올라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러 항해를 시작합니다. 항해는 만만치 않았죠. 바다는 거칠었고, 거센 폭풍에 휩쓸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땅에 제2의 트로이아를 세울 수 있을까?’ 수시로 찾아오는 회의와 절망이 아이네아스와 그의 동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기약도 희망도 없이 7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에 도착해, 디도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그녀는 원래 페니키아에 살던 큰 부자였는데, 탐욕스러운 오빠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의 재산을 노리며 음모를 꾸미자, 고국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카르타고에 도착한 그녀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 함께 떠나온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죠. 디도는 아이네아스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특히 아이네아스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아이네아스는 디도가 고마웠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그녀를 성심껏 도와주었죠. 둘은 부부처럼 지냈고,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멸망한 트로이아를 떠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고 동료들과 함께 바다를 떠돌았는데, 그 꿈을 버리고 디도의 도시 건설을 도와주며 살아도 되는 건지. 너무나 고되게 떠돌다 보니, 안주하는 것에 만족한 건 아닌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죽은 아내가 지금의 아이네아스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제우스는 어떤 말을 할까?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받아주고 1년 넘게 보살펴주었던, 사랑하는 디도를 떠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설령 디도를 떠나 출항한다고 해도, 미래의 항해는 안전할지, 미지의 땅에 도착한다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이냐, 조국이냐? 현재의 안락함이냐, 미래의 꿈이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아이네아스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이네아스는 디도를 떠나기로 합니다. 자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사명을 저버릴 수가 없었던 거죠. ‘가슴은 아프지만 사랑하는 디도를 떠나야 한다.’ 그는 파리스를 기억했습니다. 예전에 파리스는 사랑을 선택하여 ‘존재하던 트로이아’를 망하게 했는데, 지금 자신이 또 다시 파리스처럼 사랑을 선택한다면 ‘앞으로 존재하게 될 트로이아’를 망하게 할 겁니다. 아이네아스는 파리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했고, 그것이 왕족으로서 마땅하다고 생각했죠. 사랑 대신 사명을 선택한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 중부에 도착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합니다. 그로부터 약 500년 후인 753년, 그가 세운 나라는 로물로스에 의해 로마로 거듭납니다. 아이네아스의 선택은 로마의 건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선택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