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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인생을 만들기 때문이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제우스 때문에 생깁니다. 제우스는 테티스 여신을 사랑했는데,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제우스는 안타깝지만, 테티스를 사랑할 수 없었죠. 대신 펠레우스라는 인간에게 시집을 보내고, 성대한 결혼식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의 모든 신을 초대했죠. 그런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심술이 난 에리스는 흥에 겨운 결혼식장에 황금사과를 던졌죠. 신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그 황금사과에 집중되었습니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게라고 쓰여 있었죠. 그러자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나섰습니다. 그 사과에 적힌 아름다움의 명예에 여신들의 경쟁심이 불탔던 겁니다. 제우스는 그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리는 판결을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 여신이 미모로 경쟁하지 않고, 파리스를 매수하려고 한 겁니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줄 테니 자신을 지목하라고 하죠. 아테나는 누구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의 지혜를 주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여러분이 파리스라면 누굴 선택하시겠습니까? 황금사과를 어떤 여신에게 줄 때, 파리스는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될까요? 헤라를 선택하면, 파리스는 쟁쟁한 형님들을 제치고 트로이아의 왕좌에 올라 세계를 지배할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테나에게 황금사과를 준다 해도 사정은 비슷할 겁니다. 파리스는 권력의 정점에 올라 천하를 호령할 기회를 얻을 겁니다. 그에 비해 아프로디테의 제안은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지상 최고의 권력과 힘만 있다면 원하는 여자를 얼마든지 취할 수 있을 텐데, 아프로디테의 말을 들을 바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황금사과를 받은 아프로디테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당대 최고의 미인을 파리스에게 주기로 합니다. 그 여인은 바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습니다. 이미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지요. 파리스는 스파르타로 건너가 헬레네를 납치해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았던 겁니다. 아내를 잃은 메넬라오스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전역의 전사들을 10만 명 넘게 모아 1,186척의 배에 태우고 에게해를 건너 트로이아를 칩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은 파리스에 대한 메넬라오스의 분노와 보복은 정당하겠죠? 잘못은 애초에 파리스에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파리스는 헬레네를 데려오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선물로 받았으니까요. 헬레네가 유부녀였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리스의 선택 때문에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결국 트로이아는 망했습니다. 조국을 파멸에 이르게 한 파리스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일까요? 그런데 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역시 전쟁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전쟁에서 패하진 않았겠죠. 헤라나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당대 최고의 지배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파리스는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요?

다시 제우스로 돌아가겠습니다. 제우스는 테티스를 사랑했지만, 아들에게 쫓겨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테티스를 포기하죠. 권력을 지키려고 사랑을 포기한 겁니다. 그 결과 제우스는 영원히 권력의 주인공이 되었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곁에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의 권력 앞에 모든 이들이 굴복했지만, 진심으로 그와 우정을 나누거나 충성을 바치는 이들은 없었던 겁니다. 외로운 권력자. 어쩌면 파리스는 자신에게 판결을 맡겼던 제우스의 고민을 헤아린 후에, 아프로디테를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권력보다는 사랑이 인생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거죠. 또한 파리스는 세 여신들이 무엇을 두고 경쟁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이죠. 세상에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세 여신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차지하려던 가치가 아름다움이었던 겁니다. 권력을 약속한 헤라도, 지혜를 주겠다던 아테나도 모두 ‘아름다움’을 탐했던 겁니다. 그러니,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한 아프로디테의 제안이 세 여신들이 차지하려던 지고의 가치, 아름다움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영리한 파리스는 그것을 간파한 것 같습니다.

사랑과 아름다움, 그것이 파리스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불행을 겪고 조국은 망했으니, 파리스가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만 놓고 볼 때, 무시하거나 비난할 순 없을 겁니다. 권력이나 명예,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하는 그 뜨거움. 실리나 명분보다는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는 태도에서 파리스의 선택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우리의 삶이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다면,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