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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발생하는 재해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데요. 불행한 재해가 최근에는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재해현장에서 건축가의 활동이 빛이 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게센누마 마을은 2011년 3월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해 2,000명에 달하는 주민이 사망 실종한 곳인데요,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을 짓는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일본 건축가 중심이 되어 진행합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결국 자본과 결합되어, 통상적인 대중과 동떨어져 작품 활동에 매진해온 것에 대해서 건축가의 자성에서 시작된 작업으로서, 이토토요는 후배 건축가와 함께 재해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임시주택은 콘크리트벽과 경사지붕으로 꾸며진 단순한 구조로서, 건축재료는 현지에서 최대한 조달하고, 지진 및 해일로 쓰러진 소나무 등의 목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최우선적으로 피해현장 지역주민의 삶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주택을 지었습니다. 초기 원시인들이 짐승과 재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만든 쉘터가 연상되는 형태입니다. 이토토요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2013년에 수상할 만큼 일본의 대표 건축가인데요, 건축디자인에 사회적 책임을 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요, 이제는 원로 건축가로서 남다른 책임감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 상처 입은 이들이 쉴 수 있는 쉼터를 건설한 것 역시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일본인 건축가 시게루 반은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입니다. 이로서 일본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6회 배출하며 최다 배출국이 되었습니다. 1994년 내전 때문에 길바닥으로 내몰린 르완다의 난민들을 위해서 종이 파이프를 이용한 거주지를 제안하였는데요, 종이주택을 만들고 건축을 통한 재난피해 복구활동을 선보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종이 봉이 건축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보시며 됩니다. 건축자재 구하기 힘든 땅에 더우기 내전으로 더욱 길바닥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구하기 쉽고 설치도 간단한 형태로 종이로 제작해서, 재빨리 지원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죠. 시게루반은 종이 건축가라고 불릴 정도로, 종이를 기본 건축자재로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일상의 건축에서도 사용하지만, 이렇듯 각종 재난의 현장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죠. 1995년 고베지진 당시 시게루 반은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임시거처를 디자인하는데요, 개인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칸막이를 설치한 것입니다. 종이박스로 바닥과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종이봉으로 연결하여 천으로 가려준 것이죠.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재해를 입은 분들께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다카오리 가톨릭 교회라는 임시 성당도 종이 구조로 지어졌는데, 원래 3년간 설치될 계획이었다가 10년간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2005년 타이완 지진 발생 당시 이 성당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재난 지역으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종이구조가 10년을 버틴 것도 대단하지만, 재활용되어 다시 상설 교회 용도로 재활용된 것도 아주 의미심장한 건축 행위라고 보입니다. 그 어떤 잘 지은 성당보다 못지않게 이 종이 성당의 공간의 의미는 깊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시게루반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여러 실험을 통해서 종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한다면 방수와 방염처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외로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해서 원한다면 상설 건물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하고 재활용 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환경과 재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시게루 반은 기존의 건축자재보다 더욱 친환경적인 재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 것입니다. 한편 2011년 3월 대지진 이후에도 어김없이 시게루반은 재해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이재민들에게 칸막이는 물론이고, 임시 공동주택 설계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주택으로 개조한 화물용 컨테이너를 나란히 층층이 배열하여 만든 공동주택으로 188가구가 입주하였고, 또 있을지 모를 지진에 대비하여 내진설계를 하고 3층 높이로 안전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의 충격은 대한민국 전체를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슬퍼하는 가운데 며칠 사이에 세월호 선체모형을 제작해서 구조본부 현장으로 들고간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배의구조를 보다 알기 쉽게 모형으로 제작함으로써 구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것이죠. 바로 건축가 조성룡 선생님 이신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건축가분 중 한 분이시죠. 잠수부가 아닌 이상 대부분 가슴만 아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최선의 것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기부한 원로 건축가의 실천력에 많은 이들이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세월호 구조활동을 위해서 복잡한 선실 설계도면을 이해하기 쉬운 입체모형으로 만들어 밤을 새워 바로 해경에 전달한 것은 건축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자,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가가 사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죠.
건축을 짓는 행위, 그리고 건축을 디자인하는 행위 자체는 자본의 중심에서 벌어져야 할 일이지만, 이렇듯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위한 건축을 선보이는 건축가의 사회참여가 있음으로 인해서 더욱 건축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또한 손쉽게 설치 가능한 방법으로 건축을 하여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선실 구조를 보다 쉽게 설명하여 구조활동에 지원하는 것. 뛰어난 공학이 필요한 건축기술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는 건축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사람과 더불어 사회와 더불어 존재하는 건축이 가장 좋은 건축이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