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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금융인 롤 모델, 골드만삭스 CEO

biumgonggan 2021. 6. 1. 00:19

150년 전통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1929년 미국 대공황 당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사실, 알고 계십니까?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던 골드만삭스를 구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시드니 와인버그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천재가 세 사람 있었다. 헨리 골드만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워딜 캐칭스가 있었다. 세 번째가 시드니 와인버그였는데, 이중에 시드니 와인버그만이 역경을 딛고 끝까지 갔다" 골드만삭스의 소유주였던 윌터 삭스의 이야기처럼, 시드니 와인버그는 1930년부터 69년까지 무려 39년간 골드만삭스의 CEO로 재직하며 골드만삭스를 역경에서 일으켜 세웠는데요. 오늘은 키 163cm의 거인, Mr. 월스트리트, 시드니 와인버그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1907년, 16살 소년이 뉴욕 마천루 꼭대기 층부터 시작해, 한층 한층 내려오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8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뛰쳐나온 이 어린 소년은 3층에 위치한 골드만삭스 사무실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주급 3달러짜리 '심부름꾼의 심부름꾼' 일이었지만 소년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자리였죠. 60년여간의 골드만삭스 근무 기간 중 39년을 CEO로 재직했던 시드니 와인버그의 시작은 이렇게나 미약했습니다.

모자의 먼지나 신발의 진흙을 터는 허드렛일이었지만 그의 성실함과 영리함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는데요. 창업자의 손자, 폴 삭스였습니다. 폴 삭스는 와인버그를 우편물실 직원으로 승진시켜주었는데요. 아시는 것처럼 와인버그는 우편물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금융맨으로서의 커리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와인버그는 1927년에는 골드만삭스의 파트너가 되었고, 1930, 마침내 CEO에 등극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1930년은 골드만삭스의 역사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였습니다. 세계대전 특수로 주식시장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가자, 당시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대표였던 워딜 캐칭스는, 안하무인이 되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했는데요. 1928년 12월에는 골드만삭스트레이딩컴퍼니, GSTC라는 투자신탁회사를 설립해 막대한 투자자금 확보에 나섰습니다. 1929년 2월 2일 136.50달러였던 주가가 닷새 후 222.50 달러로 급등했고, 얼마 안가 326달러까지 치솟았는데요.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2910월 주가대폭락으로 GSTC의 주가는 1.75달러까지 폭락했고 막대한 자금이 증발하며 골드만삭스의 명성은 땅바닥에 떨어졌죠.

바로 이 시기, GSTC가 초래한 폐허 위에서 골드만삭스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잡역부 보조로 입사한 시드니 와인버그였던 것입니다. 캐칭스가 떠난 뒤, 와인버그는 GSTC의 자산을 청산하는 아주 더디고 고통스러운 작업을 묵묵히,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며 골드만삭스를 세계 최고 은행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뜨거운 열정입니다. 와인버그는 다소 극성스럽게 보일정도로 자신이 맡은 바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습니다. 20세기 전반기만 해도 골드만삭스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생겨난 제조 업체나 유통회사 등 신흥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업무를 수행하곤 했죠. 이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와인버그는 고객과 밀접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고객사의 이사회에 참여했는데요. 중요한 건, 이사 자리를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와인버그는 고객사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는 사실입니다.

"젠체하는 이사의 시대는 지나갔다. 공적인 업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와인버그는 이렇게 말하며 '일하는 이사'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1933년에 와인버그가 발표한 '이사들을 위한 10계명'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문이었습니다. 매월 일정한 장소에서 회의를 개최할 것, 외부감사보고서를 제시할 것, 매출, 이익, 대차대조표 변경사항을 보고할 것 등등 현대적 이사회의 역할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와인버그였죠. 이사로서의 책임감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와인버그는 자신이 대변하는 회사의 제품만 사용했는데요. 거의 광적이었습니다. 제너럴 푸드의 이사로 재직할 당시, 한 번은 레스토랑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요. 제너럴 푸드의 Kraft 제품이 아닌 타사 치즈가 올라오자 웨이터에게 Kraft 치즈를 가져 다 달라고 소리를 지른 일도 있었고요. 시어스로 벅 이사회의 멤버로 재임하던 동안에는 자신의 자택을 마치 시어스로 벅 백화점의 쇼룸 같이 만들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드니 와인버그를 다른 투자 은행가들보다 우뚝 서게 해준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였습니다. 기업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와인버그의 행보는 자칫 '책략가'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특유의 여유와 위트, 솔직담백한 성격 덕분에 와인버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와인버그는 원형 소파에 둘러앉은 이사들 사이에서, 바닥에 떨어진 서류더미를 주우며 "무슨 회사에 테이블 살 돈도 없는 거야?"라고 소리를 친다든가, 법률 양식에 맞춰 끝없이 숫자를 읽어나가는 간부에게 갑자기 "빙고!"라고 외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 딱딱한 회의실 분위기를 유연하게 풀어가기 위한 와인버그의 전략이었죠.

살아생전 와인버그의 사무실에는 광택이 나는 타구, 그러니까 침이나 가래를 뱉는 그릇이 하나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첫 번째로 수행한 업무가 바로 그 타구에 광을 내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의 가래침을 받아내는 미천한 타구가 몇 천억 원대의 예술작품과 나란히 전시되어있듯,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한 시드니 와인버그의 성공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귀감으로, 또 전 세계 금융인들의 롤 모델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