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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등반가들 사이에 한 청년이 화제가 됐습니다. 화덕과 연장을 차에 싣고 다니는 이 청년은 등반을 하면서, 암벽을 타는 데 딱 맞는 장비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요. 그가 만든 장비들이 동료들 사이에서 크게 히트를 친 거죠. 이 별난 청년의 정체는 바로 세계적인 아웃도어 업체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취나드입니다. 어려서부터 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이본은 열여섯에 처음으로 암벽등반을 접한 후, 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는데요. 비싼 장비를 살 돈 이 없어 직접 장비를 만들어 산을 타다가 1964년 아예 몇몇 등반 동료를 모아 본격적인 장비제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이본과 동료들은 돈을 벌기보다 산을 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요. 때문에 이본이 세운 취나드 등산장비 회사 카탈로그에는 등산철인 5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신속한 납품을 기대하지 말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을 정도였죠. 이본은 사업을 등산복 제조로 확장하고 사명을 파타고니아로 변경한 다음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걸핏하면 장비나 의복을 실험한다는 핑계로 사업은 동료들에게 맞기고 모험을 즐기러 떠나곤 했죠. 이렇게 사업보다는 산을 더 좋아했던 청년이 어떻게 세계적인 아웃도어 회사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등반 장비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제품입니다. 잘못될 경우 누군가를 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품질이 가장 중요한데요. 이본과 동료들은 자신이 자기 장비의 최대 고객이었기에 이 장비에 내 목숨이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제작에 임했습니다. 이런 정신은 제품을 등산복으로 확대했을 때도 이어졌는데요. 이본은 등산복이 '옷'이 아닌 '입는 장비'라고 말합니다. 고산 지대에서 체온 유지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등산복이기 때문이죠. 사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등산복의 개념이 따로 없었습니다. 등반가들은 청바지를 잘라서 만든 반바지 위에 흰색 티셔츠 한 벌을 입고 등반을 하곤 했는데요. 때문에 로프에 목이 긁히거나, 다리에 상처가 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던 1970년, 스코틀랜드로 겨울 등반을 갔던 이반은 럭비 유니폼을 보고 등산복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럭비 같은 격렬한 운동을 견딜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진데다가 옷깃이 있어, 등반할 때 입으면 상처를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데요. 예상은 적중했고, 이 일로 등반에 있어 '옷'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본은 본격적인 등산복 개발에 들어가게 됩니다. 파타고니아의 등산복은 기능면이나 안정성 면에서 등반가들 사이에 명성이 높습니다. 거기에는 이본이 평생 등반을 하며 직접 체험한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인데요. 처음엔 보다 튼튼하고 등반 장비를 편히 보관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든다든가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산지대 등반에 나섰던 동료들이 혹한에 목숨을 잃는 것을 접한 후, 생명을 살리기 위한 옷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요.
1976년 업계 최초로 기존의 모직보다 훨씬 가볍고 보온력이 뛰어난 폴리에스터로 된 등산복을 출신 한데 이어, 1980년에는 가벼우면서도 물기를 머금지 않는 신소재를 사용한 등산용 내복을 출시했죠. 아무리 따뜻한 등산복을 입어도 그 밑의 면내의가 땀을 머금은 채 얼어붙게 되면 등반가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에 귀를 기울인 그의 노력은 수많은 등반가들의 생명을 구하는 '등산복'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철학이 담긴 제품들은 파타고니아를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피타고니아의 직원들은 근무 중 언제든지 좋은 파도가 오면 파도타기를 하러 나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키를 타러 가거나 등산을 하러 갈 때도 모든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죠. 회장인 이본 역시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에도 등반가이자 모험가로 전 세계를 누비는데요.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서핑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등반을 하려고 회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직업과 놀이를 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직접 즐겨본 사람만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본의 이런 철학은 독특한 인사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도 종합 건강보험을 들어줬는데요. 한때 이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모험을 즐기려는 스포츠광들을 회사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었죠. 파타고니아의 직원이 된 그들은 그 누구보다 파타고니아 제품의 차이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파타고니아 직영점에서 판매를 담당하자 매상은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파타고니아 직원들에게 '등산장비'는 단순히 팔기 위한 제품이 아닙니다. 언젠가 자신이 산속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켜줄 '생명줄'인 것이죠. 직원들을 함께 산을 오르는 동료로 생각하는 이본의 마음이 파타고니아를 재능 있고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 사이 매출이 2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증가할 정도로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1991년 경기침체가 찾아오면서 이러한 급격한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데요. 40% 이상이던 성장률이 20%로 급감하며 큰 타격을 받게 되죠. 사실 그동안 파타고니아는 너무 급격히 성장하느라 스스로를 돌아볼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이본은 왜 사업을 하냐는 질문에 '원래 사업을 하려던 것이 아닌데 이렇게 되어버렸다'라고 대답할 정도였죠. 하지만 회사가 위기에 직면하자 직원들과 이본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 설립 초기, 이본은 주력제품이었던 '피톤'이라는 장비가 암벽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생산을 중단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 일을 떠올린 그는 이후 환경과 인간을 살리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제품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환경에 해를 끼치는 제품에 대해 전면적인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요. 이때부터 지금까지 파타고니아는 모든 제품 소재는 물론이고 생산과정에서 소비되는 모든 유해물질을 파악해서 하나씩 하나씩 대체물질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파타고니아는 1985년부터 이익의 10%나 매출의 1%중 큰 금액을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캠프를 열어 환경운동가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한 해에 2개월까지는 환경운동을 위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봉급을 지급하는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환경 운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죠.
한 등반가의 도전에서 시작된 피타고니아의 노력은 이제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나이키나 리바이스, 갭 같은 대기업들도 유기농 면화와 같은 친환경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요. 파타고니아의 지원으로 댐이 없어진 곳에 연어가 돌아오고 수백만 에이커의 땅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본은 결코 ‘기업가’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을 산을 좋아하는 대장장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그의 기업가답지 않은 경영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