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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적을 믿은 인도의 한 젊은이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젊은이는 스탠퍼드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한창 나이셨기 때문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청년은 당장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뭄바이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서도 가을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죠. 하지만 청년은 그 후 스탠퍼드를 찾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4형제 중 막내인 그 청년을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었죠. 당시 회사 상황은 절망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는 직원 수 350명, 연 매출 150만 달러 정도의 작은 식용유 회사였는데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처지에 최고경영자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거의 파산 일보직전이었지요. 그런데 40여 년 후, 이 회사는 직원 수 10만명에 매출이 7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파산 직전이었던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이 청년은 바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위프로(Wipro)의 회장 아줌마 프렘지입니다.
IT기업은 커녕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용유 공장도 경영해 본 적이 없던 청년이 어떻게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첫 번째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1966년 프렘지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 가장 반발한 것은 주주들이었습니다. 그가 참석한 첫 번째 주주총회장은 경영진에 대한 성토로 아수라장이었는데요. 한 주주는 '당신 같은 애송이에게 회사를 맡길 수 없다.'면서 '회사가 망하기 전에 어서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팔아치우라.'라고 소리쳤죠. 사실 그 주주의 말이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었는데요. 프렘지는 스탠퍼드에서도 전기공학을 전공한 데다가 경영수업을 받은 적도 없어 경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마치 수영장에 떠밀려 빠진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빠져 죽기를 기다리는 대신 살기 위해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주주들의 우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굳게 마음먹은 거죠. '위프로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꿈을 향한 분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우선 부족한 경영지식을 채우기 위해, 낮에는 사업을 돌보고는 밤에는 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경영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필요한 책을 추천받아 읽기도 했죠. 이 습관은 70세가 가까운 지금도 남아있는데요. 그는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고, 새벽에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CEO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프렘지 회장은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세요. 때로는 꿈을 위해 계속 참고 노력하는 것이 기적을 만들기도 한답니다."라고 말이죠. 꿈을 위해 인내했고,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낸 프렘지 회장, 그의 두 번째 성공비결은 이것입니다. 아줌마 프렘지는 기업가 중에서도 별종으로 통합니다. 2006년 '포춘'에서 인도 최대의 갑부로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면서도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고요, 자동차는 아반떼급의 차를 이용하는데 이마저도 최근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1996년에 나온 포드의 소형차를 타고 다녔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프렘지가 아들 결혼식에서 고급 접시 대신 일회용 종이접시를 사용했다는 것은 인도 비즈니스계에서 유명한 일화죠.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퇴근한 다음 사무실 전등이 꺼졌는지 일일이 확인하질 않나 화장실 휴지 사용량까지 점검할 정도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프렘지 회장을 돈만 아는 구두쇠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여기에는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돈보다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질적 성공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무리 남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정경유착이 심한 인도에서 정부에 뇌물이나 정치자금을 일절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회사를 맡았을 당시에는 인도 정부의 부정부패가 더욱 심했습니다. 정부는 기업활동에 심한 규제를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뇌물로 그런 문제를 해결했죠. 정부 관리나 고객들은 리베이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회사인 위프로에서도 기름 원료인 땅콩을 납품하는 농부들에게 뇌물을 받는 직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프렘지는 부정부패 없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죠. 그리고 경영진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먼저 어떤 부정부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제로 허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를 어긴 직원들에 대해서는 해고 등의 중징계로 대응했죠. 물론 프렘지 자신도 뇌물을 요구하는 관리나 고객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기간 추진해 온 프렘지의 윤리경영은 이제 국민과 다른 기업들의 '신뢰'로 이어져 위프로에게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인도 남부의 벵갈루루 지역은 프렘지가 컴퓨터 공장을 세우기 전에는 날씨 좋은 휴양지에 불과했습니다. 프렘지는 그런 곳에 최초로 투자하고 IT바람을 불러일으켜 현재는 2,000여 개의 IT기업과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의 연구소가 있는 '인도의 실리콘벨리'로 만들었죠. 이런 기적의 사업가 프렘지가 이제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인도 초등교육 개선을 위해서 2001년 사재 5,000만 달러를 들여서 교육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의 학습법과 교사 커리큘럼 등의 개선을 위해 매년 500만 달러씩 기부해 왔지요. 2010년 12월에는 추가로 자기 재산의 8분의 1인 20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거액의 재산을 초등교육을 위해 쏟아붓는 이유는 인도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초등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절대 빈곤층에 속할 정도로 많은 국민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요. 가난으로 인해 교육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프램지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교육을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겠다는 꿈이죠.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어떻게 개인이 해결할 수 있겠냐며 그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인내와 가치라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꿈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해가고 있습니다. 사업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켰던 프렘지가 이제 기부를 통해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