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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미국 헤어케어 시장 1위 기업

biumgonggan 2021. 5. 27. 13:31

2006년 배우 윌 스미스가 친아들과 함께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스토리는 의료기기 판매원에서 홈리스로 전락했다가 나중에 주식 중개인으로 억만장자가 된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다룬 영화인데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인생처럼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삶을 역전시킨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노숙자에서 포브스 선정 세계 100대 부자로 등극한, 존 폴 미첼 시스템즈CEO 존 폴 디조리아인데요. 오늘은 그의 영화 같은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헤어 용품 전문기업인 '존 폴 미첼 시스템즈'의 최고경영자 존 폴 디조리아는 가난한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나 편모 손에 자랐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는 신문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요. 그러다 형편이 더 어려워지면서 형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진 후 거리에서 방황하며 갱단으로까지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뭘 해도 실패할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인데요. 선생님의 말에 오기가 발동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보란 듯이 미국 해군 의과학교에 들어갑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학교를 채 마치지 못했지만, 그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경험을 쌓아 가는데요. 주유소 직원, 빌딩 경비부터 백과사전, 복사기, 보험 등 다양한 상품의 세일즈맨으로도 활약합니다. 그리고 이때 경험을 살려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레드킨에 입사하는데요. 입사 6개월 만에 하루 천 달러를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전문 세일즈맨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그는 창업에도 도전합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연이어 실패했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 그는 결국 노숙자로 전락합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노숙자에서 세계 100대 부자로 삶을 역전시킬 수 있었을까요?

노숙자로 거리를 전전하던 그에게 어느 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바로 레드킨에서 함께 일했던 헤어디자이너 폴 미첼. 디조리아의 세일즈 능력과 성실함을 눈여겨봤던 폴 미첼은 그에게 동업을 제안합니다. 수중에 가진 것을 모두 털어 겨우 마련한 돈은 700달러. 이 돈으로 그는 폴 미첼과 함께 헤어케어용품 사업에 뛰어드는데요. 디조리아는 마케팅 전문가로서, 폴 미첼은 헤어 전문가로서 비즈니스를 함께 하며 시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헤어로션'을 출시한 두 사람은 유통단계를 대폭 축소해 디스트리뷰터-헤어살롱-소비자로 이어지는 3단계 판매 방식을 택합니다. 일반 유통점이 아닌 헤어살롱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질 좋은 제품을 쓸 수 있고, 헤어살롱 주인도 추가 수익을 보장받게 한 것인데요. 일반 유통을 통해서 판매하는 것이 매출에는 더 유리하지만, 소비자가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방식이 많은 헤어드레서들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단돈 700달러로 시작한 그의 회사는 종업원 100명에 연 매출 1.5억 달러, 90여 가지 제품을 156개국에 수출하는 미국 헤어케어 시장 1위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디조리아는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첫째 수많은 거절에 대비하라, 둘째, 하기 싫은 것도 기꺼이 하라'라고 조언하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성공한 사람의 다른 점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했던 모든 것을 했다는 점이다. 대부분 그들이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받는 최소한만 일한다. 그것은 앞서 나가는 길이 아니다. 도둑질이 아니라면 언제나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라. 비록 청소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과정을 보고 감동할 것처럼 하라."라고 말이죠.

헤어제품뿐 아니라 테킬라 페트론, 반려견 미용용품 존 폴렛 등 연이은 성공으로 노숙자에서 이제 33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부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존 폴 디조리아.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평생 가난에 시달렸던 그가 큰돈을 벌어들인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바로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입니다. 모든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 이념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데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지키고, 아마존강 유역 산림을 보존하는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물론 에이즈 퇴치와 불우 아동 구호, 아프리카 난민 구호활동까지 펼칩니다. 2012년에는 환경운동가로서 한국에 방문해,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생태구역으로 만드는 일에까지 큰 흥미를 보였다고 합니다. 디조리아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1년 기빙 플렛지 기부서약을 통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기빙 플렛지는 2010년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등 52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기로 서약하면서 출범해, 현재 전 세계 200여 명이 서명한 바 있는데요. 그가 이처럼 나눔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네가 얼마의 재산을 가졌든 너보다 더 궁핍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라고 했던 어머니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 섰을 때도 한결같은 자세로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CEO 존 폴 디조리아.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남의 아픔까지 보듬을 줄 아는 그의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