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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기부왕 엘리브로드

biumgonggan 2021. 5. 26. 16:46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설립한 기부단체인 더 기빙 플레지를 아시나요? 이 단체에 세계 부호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도 이 단체의 멤버입니다. 바로 7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이자, 기부왕으로 알려진 엘리 브로드입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편이지만, 포춘 선정 500에 드는 기업을 두 개나 만들어낼 정도로 기부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인데요. 비합리적인 생각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엘리 브로드.

1933년 리투아니아에서 이민 온 유태인 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엘리 브로드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도장공, 어머니는 양재사로 일을 했었죠. 1954년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이수한 엘리 브로드는 같은 해 지금의 부인인 Edith Lawson과 결혼하고, 공인회계사가 되는데요. 회계사로 일하던 중 그는 좀 더 많은 돈과 자극을 얻기 위해 다른 사업에 도전할 결심을 합니다. 고심 끝에 장인에게 2만 5천 달러를 빌린 엘리 브로드는 1957년, 부인의 친척인 Donald Kauffman과 함께 Kauffman and Broad, 현재 KB Home을 설립하는데요. 이 때 엘리 브로드는 부동산업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디트로이트 교외로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한 현상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를 근거로 그들의 취향에 맞는 규격형 주택을 공급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죠. 부동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엘리 브로드는 1971년, 볼티모어의 소형 보험사인 Sun Life Insurance of America를 5천2백만 달러에 인수하며 새로운 시작에 나서게 되는데요. 보험사명을 SunAmerica로 바꾸고, 퇴직연금의 강자로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1999년 미국의 최대 보험사인 AIGSunAmerica180억 달러에 매각하여 막대한 차익을 벌었죠. 2000년부터 엘리 브로드는 본격적인 자선 사업가로 활동해오고 있는데요. 한 가지 길에서도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어떻게 연관성이 없는 사업 모두를 해낼 수 있었을까요?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키려 노력하지만,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 맞춘다. 따라서 모든 혁신은 비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엘리 브로드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인데요.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성공비결입니다. 그가 주택건설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누구나 당연시 여기는 기본을 바꾸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주택에 대한 사회적 통념 중 하나는 반드시 지하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는 지하실이 없으면 안 되나? 하고 반문했고, 없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스 난방이 일반화되면서 주로 석탄 저장 용도로 쓰였던 지하실이 필요 없어지고 있었고, 또 지하실이 없다면 주택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지하실이 없는 주택을 지어 팔자, 사업 첫 해에 집 120채를 모두 팔 수 있었습니다. 또 엘리 브로드는 주택사업의 정의도 다시 내렸습니다. 당시 주택건설업자들은 실제로 땅을 소유하고 부동산업을 했는데요. 그는 주택만 만들어 파는 제조사가 되기로 한 거죠. 이렇게 되자 회사는 자재관리, 자금조달, 주택자금 대출을 중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다른 업체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경쟁력을 안겨주었습니다.

엘리 브로드의 두 번째 성공비결은 논리적인 사고입니다. 그는 자신이 비합리적인 사람이지만 그것이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감정에 흔들릴 때도 사실과 합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코프만 앤 브로드가 급성장하고 있었고 대다수 전문가들이 주택건설업이 호황을 맞을 것이라 예측했을 때, 그는 주택건설의 침체 시기가 분명 올 수 있다고 내다봤죠. 그래서 불황기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후에 그는 과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과거에는 미래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실마리들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죠. 당시 엘리 브로드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어떤 기업들이 살아남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러다 어려운 시기에도 사람들이 보험을 유지하고, 보험사는 보험료를 바로 지급하지 않아 현금자산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생명보험업이 안정적인 사업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생명보험업을 수년에 걸쳐 철저히 조사한 끝에, 나이 들어가는 베이비부머에게 연금상품을 파는 것이 수익성이 높은 틈새시장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선라이프 보험사를 인수하고, 이 회사를 퇴직연금 강자로 빠르게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엘리 브로드의 논리적인 사고 덕분이었습니다.

엘리 브로드는 자선사업도 기업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운영했습니다. 브로드 재단의 기부 원칙은 판도를 바꿀 수 있을만한 곳에 기부한다인데요. 이 기부할 대상을 결정할 때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합니다. 첫째, 20년 안에 기부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되는가? 둘째, 우리의 기부 없이도 이뤄질 수 있는 일인가? 셋째, 우리가 그 일에 적합한 기부자인가? 여부인데요.

현재 그의 재단은 미국의 공립 교육, 생물 의학, 예술 등 세 가지의 자선영역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공립학교 출신인 엘리 브로드는 자신의 성공이 양질의 공립 교육 덕분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미국 공립 교육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요. 생물 의학 연구를 위해서는 Broad Institute를 설립했고, 염증성 장 질환 치료를 위한 센터를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LA를 현대 미술의 중심 도시로 만들기 위해 Museum of Contemporary Arts 설립은 물론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을 전시하는 엘리 브로드 미술관을 건립하기도 했죠. 교육, 의학, 예술. 어떻게 보면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분야지만 자세히 보면 엘리 브로드의 자선 사업은 사람, 그리고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는 지금 당장 뒤쳐진 학생들에게 추가 수업과 장학금을 제공하기보다는 교육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계 인재를 키우는데 투자하고, 의학에서는 구호 의료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의료 연구 기관을 지원하고 있죠. 예술에서도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 이상으로 LA를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미술 기관들을 설립하는데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81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엘리브로드는 포춘 500대 기업을 운영할 때보다 지금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 그의 직업이 모두 인간의 필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이라고 하는데요.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자녀교육, 예술 체험, 더 건강한 삶이라는 꿈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죠.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카네기의 말을 늘 새기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자선 노력을 멈추지 않는 엘리 브로드. 앞으로도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