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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반고흐를 천재화가로 만든 이것

biumgonggan 2021. 5. 22. 07:43

1888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이었는데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아를에 살던 반 고흐고갱이 온 지 두 달 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의견 차이가 생겼고 그간 쌓였던 불만이 터져 커다란 싸움으로 변했습니다. 고갱은 반 고흐만큼 공동작업에 열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성적인 고갱은 감정 기복이 심한 반 고흐와 성격적으로 맞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결국 고갱이 떠나겠다고 하자 반 고흐는 폭발했습니다. 뛰쳐나가는 고갱을 따라가 자해하겠다고 위협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 즉시 반 고흐는 집에 들어와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고 고갱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일은 미술사에서 아주 유명한 일화인데요. 반 고흐에게 고갱은 이토록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갱을 초대해 두 달 동안 지내면서 커다란 영감을 받았고 자신의 그림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반 고흐에게 동료는 외로움을 잊거나 교우를 나누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반 고흐는 미술상 직원, 교회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880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고향에서 네덜란드 화가들과 교류하며 주로 농부들의 삶을 스케치하면서 그림 실력을 키워나갔는데요, 그러다 보니 농가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밀레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어두운 화풍이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걸 깨닫고 1886년 파리로 갔습니다. 여기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그림의 색채가 밝아졌고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2년간 2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며 인상파 화풍을 빠르게 익혀 나갔습니다. 시냐크와 쇠라 같은 점묘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기법을 흡수했는데요.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리는 점묘파 그림처럼 쇠붙이 같은 짧은 선으로 붓질을 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파리로 와서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았다면 그의 개성은 이처럼 빨리 드러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 고흐의 사례처럼 경쟁은 빠른 학습을 도와줍니다. 경쟁할 대상이 있어서 나아갈 방향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지요. 특히 초보자 에게는요. 게다가 경쟁은 몰입을 불러옵니다. 기록 경기인 달리기나 빙상에서 두 사람 이상을 같이 달리게 하는 이유가 경쟁상대를 보며 기록을 단축시키라는 취지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경쟁은 사람에게 쾌감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극심한 경쟁상태에 놓이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분출돼서 흥분되고 힘이 생깁니다. 경쟁할 때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런 호르몬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핵심은 이게 경주에서 1등을 했을 때 나오는 게 아니라, 결과를 얻으려고 경쟁할 때 얻는 보상이란 사실입니다. 즉 경쟁은 그 자체로 쾌락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지요. 때문에 돈이 필요없는 부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두뇌가 활성화돼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나와 창조와 혁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월소는 주민이 1만 3천명을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요, 이 작은 도시가 정형외과 의료제품 분야에서 세계 1, 2, 3위 기업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침머, 드퓌, 바이오멧이 여기에 있는데요, 관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보조기구를 생산합니다. 이웃하고 있는 이 기업들은 생겨날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습니다. 때로는 우호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 간의 경쟁이 혁신을 가져왔고 각자의 경쟁력을 향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세계 최고가 돼 있었던 겁니다. 아마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한국의 반도체와 전자산업,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등 한 산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이 비슷한 지역에 몰려 있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케냐 선수들이 장거리 달리기를 잘하고, 단거리는 자메이카가 잘하는 게 모두 경쟁하다가 세계 최고가 된 거 아니겠습니까.

다시 반 고흐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반 고흐는 동료화가들 수준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상파처럼 그릴 수 있게 되자 인상주의에서 뭔가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인상파는 감각적이긴 했지만 화가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반 고흐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그림에 그대로 담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고갱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고갱은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풍경이나 사물을 본 후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해서 그렸습니다. 반 고흐는 고갱과 교류하면서 대상의 윤곽선을 굵게 그리는 기법을 차용했고요, 상상력에 의해 대상을 변형시켜서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한 후에 반 고흐는 자신에게 영감을 줬던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등의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새롭게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경쟁자와 다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잘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화폭에 담길 원했던 반 고흐는 이걸 잘 알았고, 자신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창조해낸 것입니다. 요즘 어느 곳이나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경쟁이 없는 곳을 찾으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입니다. 블루오션에서 편하게 이익을 챙기도록 남들이 놔두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경쟁자가 들어오면 블루오션은 곧바로 레드오션이 돼버리니까요. 이럴 때 반 고흐를 떠올리며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반 고흐처럼 많은 창조가 들은피나는 경쟁을 통해 우월한 경쟁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경쟁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어차피 마주해야 할 경쟁이라면,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경쟁력이란 경쟁을 거쳐야 강해지는 힘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