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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유명한 부전자전 선수들이 있습니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과 차두리. 허재 전 대표팀 감독과 허웅, 허훈 형제. 그리고 이제 야구에도 유명한 부전자전 선수가 생겼습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 선수입니다. 바람의 아들의 아들이라 '바람의 손자'로 불립니다. 이정후는 2017 시즌 히어로즈에서 데뷔했고, 데뷔 첫 해 전 경기 출전하며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아버지도 타지 못했던 신인왕을 따냈습니다. 야구 잘하는 아버지를, 그것도 역대 최고 스타를 아버지로 뒀으니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훈장이었지만, 동시에 낙인이기도 했습니다.

이정후는 일본 태생입니다. 1988년 나고야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즘말로, "태어나고 보니 아버지가 이종범'이었습니다. 야구는 자연스레 일상이 됐습니다. 집안에는 온통 야구 관련 장비가 넘쳐났죠. 그 익숙한 야구에서 아버지는 일부러 아들을 떼어놓으려 했습니다. 운동을 하고 싶다면 야구 말고 다른 종목을 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종범의 아들'로 야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 말고 다른 종목을 섭렵했습니다. 골프, 축구, 수영, 쇼트트랙… 이것저것 시키는 것마다 곧잘 했습니다. 하지만 피는 못 속이고 운명은 악착같은 법입니다. 사촌 형이 LG 윤대영입니다. 사촌 형이 야구를 시작하자 이정후의 몸이 달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가 스프링캠프에 가있는 동안 아들을 야구부에 입부시켰습니다. 3학년을 앞둔 봄방학이었죠.

야구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아버지 이종범은 훈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이 아는 이름과 얼굴, 2006년 WBC에서 적시타를 때리고 세리머니 하는 장면은 소년 이정후에게 오랜 자랑거리였습니다. 하지만 훈장이었던 아버지는 이내 낙인이 됐습니다. 야구선수 이정후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소년 이정후를 보는 시선과 달랐습니다. '쟤가 누구 아들이라며, 어디 한 번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는 시선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이정후는 "왜 야구를 시키지 않으려 했는지 알게 됐다.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왜 그렇게 야구를 잘해가지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원망도 해봤다"라고 말합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최고의 선수로 만든 건 헝그리 정신이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생활 속에서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열망이 에너지가 됐죠. 바람의 손자가 최고를 향하도록 만든 것은, 훈장이자 낙인이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이정후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그런 시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시선들에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속상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1군에 가려면 수비를 잘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고교생 정후는 "수비를 잘하면 1군에 있을 수 있지만 절대 슈퍼스타는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잘 쳐야 경기에 나설 수 있고,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실천해냈죠. 휘문고 1학년 때부터 매일 밤 저녁 먹고 쉬다가 9시면 방망이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드나드는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에 아랑곳없이 하루 200개의 스윙을 했습니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이정후는 "아직 어려서 힘이 약하니까, 내 장점은 정확히 중심에 맞는 콘택트라고 정했다. 그 훈련들이 지금 성적으로 돌아온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아파트 오가다 만나는 동네 어른들이 얘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스윙 열심히 하더니, 지금도 잘하는구나."라고 말이죠.

데뷔 첫 해인 2017년 신인왕을 탔습니다. 2018년에는 부상을 겪었지만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에 뽑혔습니다. 대표팀에서도 펄펄 날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정후에 대해 "야구팀에서 제일 쿨하고 멋진 선수"라고 말했죠.  아버지는 2012년 은퇴식 때 "아들이 도루 기록을 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종범이 1994년 기록한 한 시즌 도루 84개는 여전히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정후는 "중학생 때였는데, 그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구나 싶다"며 웃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 안타 196개는 도전할 만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팀 선배 서건창이 2014년 201개로 넘어서서 더 이상 최고 기록은 아니지만, 아들에게는 언젠가 꼭 넘고 싶은 아버지의 기록입니다.

스무 살이지만, 어른스럽습니다. 2018년 최고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금메달'이 아니라, '2군에 다녀온 것'이라고 답합니다. 이정후는 이전까지 2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1군 올라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크게 느꼈다. 내가 있는 자리가 당연한 게 아니구나. 더 노력해서 지켜야 하는 자리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부상 복귀 후 성적이 잘 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이종범은 은퇴 때 "의지와 목표 없이 하는 야구는 노동에 불과하다"고 했고,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 훈련은 반드시 실패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정후는 어느새 아버지 이종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바람의 손자일까요? 이정후는 "지금은 괜찮은데, 나중에 서른 넘고 그럴 때 손자 손자 그러면 이상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때쯤이면 더 이상 이종범의 아들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배경'이 아니라, 그 배경을 뛰어넘으려는 힘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그 어려움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아버지를 뛰어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