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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시카고에서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특이한 주문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도 사기 힘든 고가의 제품을 8대나 주문한 식당이 있었던 겁니다. 하도 이상해서 캘리포니아 주의 샌버너디노에 있는 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찾고, 차에서 내린 운전자들이 스스로 주문 창구로 가서 햄버거를 받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도착했는데도, 주문 즉시 음식을 받을 수 있어서 별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역에선 이미 명물이 된 맥도널드였습니다.
맥과 딕 형제가 샌버너디노에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차린 건 1940년이었습니다. 극장 근로자로 일하다가 핫도그 노점상을 보고 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바비큐 위주로 팔았는데요,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런데 손님이 늘어도 좀처럼 돈이 벌리지 않자, 형제는 레스토랑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48년 몇 달간 식당 문을 닫고, 꼭 필요한 메뉴와 서비스만 남기고 모든 걸 없앴던 것입니다.
우선, 드라이브인 식당에서 주문받고 식사를 가져다주는 ‘카홉’을 없애고 셀프서비스로 바꿨습니다. 또, 고객의 동선을 계산하고 빠른 시간 내에 조리한 음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주방과 외부 건물을 전부 다시 설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햄버거를 중심으로 프렌치프라이, 커피, 청량음료, 밀크셰이크 등 메뉴를 대폭 줄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맛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형제는 이를 위해 최적의 쇠고기 패티를 연구했고요, 고소한 프렌치프라이를 만들기 위해 철망으로 만든 통에서 감자를 건조했습니다. 이렇게 비용을 줄인 결과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햄버거를 단돈 15센트에 판매할 수 있었던 겁니다. 패스트푸드를 최초로 창안했던 것입니다.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버거킹 창업자와 타코벨 창업자도 맥도널드 형제의 식당에 와서 커다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조리법을 배워 가맹점을 차리자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길 바랐던 형제는 허가를 내줬고 주변 지역으로 하나 둘 가맹점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매장이 여덟 개나 늘어났지만 형제의 식당과는 뭔가 달랐습니다. 제대로 된 햄버거 맛을 내는 곳은 없었으며, 프렌치프라이는 눅눅했습니다. 결국 매출을 늘리기 위해 피자나 멕시칸 요리까지 판매하는 가맹점도 생겼습니다. 가맹점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식당 일로 바빴던 형제는 이들을 관리하지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패스트푸드 개념을 만든 창안자였지만 관리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는 자기들만 잘하면 되다가 남들을 잘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기껏해야 수하에 있는 종업원들만 관리하다가 범위가 부쩍 늘어난 것이죠. 마치 조직에서 고위 리더가 됐을 때 직면하는 어려움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고위급 리더가 되면 소통이나 관리를 더 잘해야 하지만 여간 어려워지는 게 아닙니다. 우선 담당해야 할 조직의 사이즈가 커져서 혼자서는 커버가 불가능해집니다. 또 레이어가 생겨서 직접 소통이 어렵게 됩니다. 팀장 시절에는 구성원을 직접 데리고 있지만 고위 리더는 직원들에게 다가가려면 팀장을 거쳐야 합니다.
게다가 복잡성이 증가해서 즉흥적 대응이 힘들어집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팀들이 산하에 묶이게 되니까요. 따라서 고위급 리더는 더 이상 코칭 베이스의 개인 레벨 소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맥도널드 형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때 형제에게 중요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시카고에서 온 믹서기 영업사원, 레이 크록입니다.
그는 창조 가는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리더였습니다. 그는 맥도널드 형제의 레스토랑을 보고 전국 체인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평생 영업사원으로 온갖 식당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될 법한 식당을 알아볼 식견이 있었던 것이죠. 그랬기에 믹서기 8개를 주문한 사실만을 가지고, 뭔가 있다는 낌새를 채고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던 것입니다. 그는 맥도널드 형제를 설득해서 가맹점을 계약할 권리를 따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시카고 교외의 데스 플레인스 점을 시작으로 맥도널드를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크록은 형제의 식당을 똑같이 복제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첫째,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모든 걸 매뉴얼로 만들었습니다. 맥도날드 형제의 조리법을 낱낱이 분석해서 누구라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빵의 크기와 두께, 패티에 들어갈 지방의 비율, 감자 튀기는 시간, 감자 보관 방법 등을 규정해서 가맹점 주인들이 따르도록 했습니다. 조리법뿐만 아니라 주방의 배치, 서비스 절차 등 식당 운영을 모두 법규 화했습니다.
둘째, 이런 방식을 철저히 습득하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햄버거 대학을 설립해 각 지점의 점주와 종업원을 교육시켰고요, 지점에 방문할 때는 규정대로 운영되는지 철저히 체크했습니다.
셋째, 인재 발굴에 항상 힘썼습니다. 맥도널드의 미래에 대해 똑같은 비전을 갖고 자기 못지 않은 열정을 지닌 사람을 찾았습니다. 가령 23세의 프레드 터너는 첫 만남부터 알아보았는데요, 실제 그는 신규 가맹점이 생기면 어디든 달려가 관련 업체까지 다 만나고 왔습니다. 훗날 회장이 되는 터너 같은 사람을 계속 발굴했기에, 이들이 크록의 분신처럼 일했기에, 수천 개의 지점에서 똑같은 맛과 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맥도널드 형제는 열정과 뛰어난 능력으로 혁신적인 패스트푸드 메뉴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레이 크록을 만나기 전까지 맥도널드는 지역 명물 레스토랑에 불과했습니다. 한편 크록은 탁월한 리더십을 앞세워서 패스트푸드 사업을 이룩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시스템 강조, 반복적 소통, 인재 중시는 오늘의 리더에게도 필요한 덕목입니다. 맥도널드 이야기는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한들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을 얼마만큼 이끌어 갈 수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공 확률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창의력과 리더십 둘 다 함께 갈 때 성공의 확률은 배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리더십이 수반되지 않는 창의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현재 맥도날드 홈페이지에는 맥도널드 형제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크록을 창업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