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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병원의 간호사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군인들의 몸은 의학 치료로 나아졌지만 전쟁으로 다친 마음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간호사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환자들에게 성경책을 나눠준 것인데요. 환자들은 그저 눈과 입으로 성경 구절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마음에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이블에서 독서치료를 의미하는 ‘비블리오 세러피’라는 말이 유래됐는데요. 이후 여러 국가에서 독서의 치유 효과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고, 영국 등지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환자들에게 약물치료 대신 책을 처방하는 등 독서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독서치유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요? 그건 인간이 인지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책을 읽으며 그 이야기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요. 때문에 미국의 저명한 심리상담 전문가, 제럴드 코리 박사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가장 적절한 때 적절한 책을 골라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상실감에 괴로워하신 적 있으신가요? 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일궈온 회사가 어려워져 워크아웃 신청을 한 한 CEO가 있습니다. 그분은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증도 심했는데요. 직원들을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 가족까지 어려움에 빠뜨렸다는 자책감이 자기 환멸로 이어진 상태였죠.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얼마나 망연자실했겠습니까? 그분은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자포자기 상태였고 너무 힘이 든 나머지 감정마저 놓아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무감정 상태라고 하는데요. 무감정 상태에 빠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의욕조차 잃게 됩니다. 그 CEO는 치료하기 위해 감정을 되살리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우선 회사가 있는 파주의 이곳저곳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꽃을 만져볼 것, 음식을 먹을 때는 어떤 맛이 나는지 느껴볼 것, 아들과 딸의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아내의 손을 잡아볼 것 등등 그리고 마지막 숙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의사이자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회고록이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이론을 소개하는 사상서입니다. 유태인이었던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절반만 마셨고, 나머지로는 세수와 면도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건강해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것도 피할 수 있었죠.
마냥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제가 이 책을 권한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기법’을 적용하기 위함이었는데요. 무슨 일이든 가장 안 좋은 경우를 상상하면 현실이 그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게 되는 원리죠. 그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아픔이든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독서 처방을 하자 그 CEO의 첫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자신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생각은 점차 바뀌었습니다. 특히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소독실에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가 담긴 원고 뭉치를 몽땅 빼앗긴 장면에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했는데요.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박탈당했던 것이다”라는 이 한 구절에서 가슴을 치며 꺽꺽 울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분 또한 사업의 실패로 인해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죠. 독서치유에서 이런 ‘동일시’는 매우 중요합니다. 책 속 인물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인데요.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가 폭발하는 등 감정 분출이 가능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문장을 가장 인상 깊은 구절로 꼽기도 했는데요. ‘내 인생은 왜 이러느냐’고 원망하기 일쑤인 자신에게 삶을 향한 태도와 의무를 생각하게끔 하는 말이라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자신과 빅터 프랭클이 처한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써보시라고 했습니다. CEO는 한참을 써 내려가더니 ‘가족이 있다’라고 적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요. 나치에 가족을 모두 잃은 빅터 프랭클과 달리 자신에게는 굳이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너무나도 분명한 삶의 이유가 있음을 순간 깨달았던 것이죠. “파주 땅이 죽음의 수용소만큼 힘든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그 CEO가 꺼낸 말입니다. 이제 그분은 직원들을 독려하여 다시 일어설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는데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생에 절망적인 순간은 찾아옵니다. 성과를 냈음에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고, 또 오랫동안 노력한 대가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죠. 무력함에 휩싸이는 그 순간, 이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런 말을 건넵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