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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우, 우리는 스파게티와 함께 먹는 미국식 미트볼에 익숙해 있지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미트볼이 있습니다. 유서 깊기로는 중국식 미트볼인 쓰즈터우(獅子頭), 사자머리도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돼지고기와 게살로 만든 어른 주먹 크기의 고기완자로 7세기 무렵 수양제가 지금의 장쑤 성 양주를 시찰할 때 그곳 절경인 해바라기 바위(葵花崗)를 넋을 잃고 바라보자 요리사가 그 형상을 본 따 만들어 바친 요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 이야기인데 현대에는 이곳 출신 저우포하이 전 중국 총리가 설날이면 일부러 찾아 먹던 고향 음식이라고 해서 유명해졌지요.

요즘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인기 있는 미트볼도 있는데요. 스웨덴 고기완자 쉐트불라(kottbullar)입니다. 스웨덴 가구회사가 세계 곳곳에 진출하면서 그곳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미트볼까지 덩달아 유명해졌는데요. 스웨덴 가정집에서 흔하게 먹는 한 끼 식사입니다. 18세기 초, 오스만 터키 제국에 망명했던 스웨덴 국왕이 레시피를 가져와 퍼트렸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북유럽의 척박한 음식문화가 외래문화를 통해 풍부해졌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페인과 남미의 미트볼인 알본디가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비롯된 요리로 이곳을 오래 지배했던 이슬람 문화가 깃든 음식인데요, 지역에 따라 향신료가 짙은 양고기 미트볼부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에 생선 완자까지 알 본디 가스라는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전쟁과 정복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지면서 다양한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변하고 새롭게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0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억의 음식으로 꼽아 화제를 모은 미트볼도 있는데요. 인도네시아의 고기완자, 박소(Bakso)입니다. 밥이나 국수에 곁들여 먹는 고기완자로, 어린 시절을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보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라고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죠.

이렇게 여러 나라의 미트볼에는 다양한 형태의 독특한 스토리가 곁들여 있는데요. 아마 어느 나라에서나 미트볼은 그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기완자인 미트볼이 서민들도 먹을 수 있게 대중화된 것은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예전에는 고기가 누구나 쉽게 먹는 식품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만큼 미트볼은 고기 한 조각이라도 아끼려고, 부스러기 고기를 모아서 만든 요리였습니다. 때문에 부자에게도 맛있는 요리였지만 서민들에게는 선망의 식품이었고 행복한 추억이 깃든 음식이었는데요.

특히 야구공처럼 큼직한 미국의 미트볼과 스파게티가 대표적입니다. 음식의 조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 미트볼의 뿌리는 이탈리아인데요. 미국에 이탈리아계 이민이 쏟아져 들어온 게 19세기 말인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약 40년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무려 400만 명이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그중 85%가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이탈리아 출신이었죠. 이탈리아가 통일될 무렵 정치적으로 박해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지역 사람들인데요. 고향에서 이들은 하루 수입의 75%를 음식을 사 먹는데 썼을 정도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던 셈이죠. 그러니 이탈리아 중산층이 먹는 고향의 미트볼, 폴 페테(Polpette) 같은 음식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달라졌습니다. 수입의 25% 정도만 식료품 구입에 쓸 정도로 엥겔계수가 낮아졌고요. 고향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고기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스러기 고기를 모아 탁구공 크기로 빚었던 이탈리아 미트볼 폴 페테를 미국에서는 야구공 크기로 큼직하게 만들었는데요. 그런 면에서 미트볼은 힘들었던 시절 이민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준 희망의 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미트볼을 엄마의 맛에 대한 향수, 추억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요. 오랜만에 고기완자 미트볼을 드시면서 헛헛한 마음의 온도를 높여보시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