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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주말에 가정의 화합을 위해 브런치 외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브런치에는 특별한 상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외식으로 브런치를 드신다면 이왕지사 조금은 우아하고 격조 높은 메뉴가 좋을 것 같은데요. 똑같은 커피나 주스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먹더라도 휴양지 리조트나 호텔에서 먹는 것처럼 클럽 샌드위치가 잘 어울립니다.
빵 사이에 베이컨이나 닭 가슴살, 양상추, 토마토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이지요. 클럽 샌드위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무거운 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다”며 미련 없이 국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여인, 심프슨 여사가 즐겼던 브런치 식사입니다. 클럽 샌드위치가 특별한 요리여서가 아니라 늦은 아침 카페에 앉아서나마 사랑을 위해 왕관까지도 버린 세기의 로맨스 같은 분위기를 느껴보자는 것이지요.
브런치의 꽃이라고 하는 에그 베네딕트(Egg Benedict) 같은 메뉴도 좋습니다. 납작한 잉글리시 머핀에 베이컨이나 훈제연어, 그리고 달걀 흰자위만 살짝 익힌 수란을 올리고 여기에 구운 토마토나 양파를 곁들여 먹는 전형적인 미국식 브런치인데요.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레스토랑 델 모니코(Delmonico’s)에서 만들어 퍼트린 요리입니다. 뉴욕과 미국 상류사회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요.
아니면 크로크 무슈(croque monsieur) 같은 음식은 어떨까요? 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햄과 치즈를 올려 먹는 프랑스식 브런치인데요. 그 위에 다시 반숙한 달걀을 올리면 바삭한 부인이라는 뜻의 크로크 마담이 됩니다. 작은 빵 한 조각만으로도 파리의 노천카페에 와 있는 것 같은 낭만과 여유를 맛볼 수 있지요. 하지만 양식이 입에 안 맞는다면 요즘 개발된 한식이나 일식 브런치도 좋습니다.
이런 고급스러운 브런치 식사가 조금은 쓸데없는 허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널리 알려진 브런치 메뉴 대부분이 서양의 유명 레스토랑이나 고급 호텔에서 만들어 퍼트린 것이어서 계란 프라이 하나, 샌드위치 한 조각 치고는 값도 비싸고요. 지나치게 귀족적인데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브런치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브런치는 아침식사인 블랙퍼스트(breakfast)와 점심식사인 런치(lunch)의 합성어입니다. 현대에 만들어진 용어 같지만 뿌리가 있는 단어고요. 더군다나 단순하게 아침 겸 점심의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가 아닙니다.
평소보다 늦은 아침 식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겠지요. 하지만 동서양을 통틀어서 이런 늦은 아침 식사를 가리키는 별도의 용어는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 영국에서 특별히 브런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데요. 영국 귀족이 보던 사냥 전문 잡지인 위클리 헌트(Weekly Hunt)에 이 말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19세기, 영국 귀족이 이른 아침 스포츠로 사냥을 끝낸 후 푸짐하게 차린 음식으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겼던 것에서 비롯됐는데요. 브런치가 단순히 늦은 아침식사가 아니라 영국이 풍요로웠던 시대에 귀족이 누렸던 풍요와 여유의 상징이라는 것이지요.
브런치는 이렇게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시작됐지만 정작 브런치를 유행시키고 세계에 퍼트린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에서도 처음 브런치는 상류층에서 시작됐는데요. 뉴욕 맨해튼에서 상류층 여성들이 주말 아침 브런치를 즐겼습니다. 여기에는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뜻밖의 이유가 있었는데요. 20세기인 1920년대까지만 해도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은 신사의 에스코트가 없으면 숙녀는 혼자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반드시 신사의 보호를 받아야 레스토랑을 출입할 수 있었는데요. 주말 브런치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남성 동반자 없이도 여성이 자유롭게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었기에 뉴욕의 상류층 여성들은 주말 브런치 식사를 하면서 사교모임을 가졌고요. 이런 상류층 여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서 깊은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앞 다퉈 브런치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지금도 브런치 메뉴가 여전히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배경이지요. 이렇게 영국 귀족과 미국 상류층 사이에 퍼졌던 브런치가 20세기 중반부터는 중산층으로까지 유행이 확산됐는데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배경으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꼽기도 합니다.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여유가 생기면서 단순한 아점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브런치 문화를 즐기게 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고요. 일하는 여성이 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모처럼 쉬는 주말 아침의 식사문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브런치 문화는 이렇게 경제적 풍요, 그리고 여성 권리 확대와 맞물려 발달했는데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브런치 문화 역시 단순히 미국 드라마의 영향이 아니라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도 아점과 브런치는 나른한 게으름이 아니라 영국의 귀족들처럼 여유로운 Slow Life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면에서 이번 주말 아침에는 간단하지만 우아하고 느긋하게 가족과 함께 브런치를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루 하루 숨 쉴 틈도 없이 달렸으니 휴일 하루 만이라도 나 자신에게 여유를 허락해 느리게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