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ECONOMIC

인공지능으로 신소재 개발

biumgonggan 2021. 5. 15. 07:29

영국 러더퍼드 애플톤 연구소의 키스 버틀러 박사는 2018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화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화학 산업에 AI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원자들을 무작위로 결합하고 이들의 물성을 시험하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는데요.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을 요하는 이 과정을 ‘인공지능’이 수행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버틀러 박사는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머신러닝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탐색하고 구성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며 화학 연구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는데요. 오늘은 AI로 개발하는 새로운 소재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물론 AI가 새로운 소재 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일부 과정을 대신해 줌으로써 혁신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요, 앞서 말씀드렸듯 기존의 신소재 개발은 직관과 경험, 그리고 무수한 시행착오의 영역이었습니다. 안티바이러스 생체모방 소재인 ‘샤클렛(Sharklet)’의 개발 과정을 예로 설명드리면, 상어의 가죽이 항상 깨끗하다는 점에 '직관'적으로 착안하여, 이를 마이크로 패턴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물질 중 상어 가죽을 모사해, 목표 물성을 구현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를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찾아내야 했는데요. 여기서 AI는 개인의 역량이었던 '직관'과 '경험'을 예측 알고리즘으로 변환하고 수많은 원자를 무작위로 결합하는 시도를 인간이 할 수 없는 속도로 수행해 새로운 소재의 후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수많은 원자들을 다양한 형태로 결합해보다가, 우리가 원하는 소재와 유사한 조합이 발견되면 이를 검토해 보도록 제안해 주는 것이죠. 이를 활용하면 기존 재료의 물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탐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겁니다.

포스텍의 이승철, 진현규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AI를 활용해 ‘합금 이상의 합금’으로 불리는 고엔트로피 합금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합금은 주재료가 되는 금속에 보조 원소를 더하여 일부 물성을 개선한 건데요, 고 엔트로피 합금은 주가 되는 금속이 없이 여러 원소를 비교적 동등한 비율로 혼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금 원소의 종류 및 함량을 자유재재로 조절해 기계적, 열적, 물리적, 화학적으로 원하는 물성을 찾아내는 것이 고 엔트로피 합금 연구의 핵심인데요, 이론상 만들 수 있는 합금의 종류가 무한한 만큼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하는 대표적 분야입니다.

이승철, 진현규 교수 연구팀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고엔트로피 합금 예측 모델을 개발했는데요. 실제로 합금을 만들어 물성을 시험하던 과거의 연구 프로세스를 벗어나 AI가 다양한 합금 조성을 먼저 시험하고 원하는 물성을 구현할 가능성이 높은 조합을 제시하면 마지막 테스트 단계에서만 사람이 참여하도록 하여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머터리얼스 앤 디자인' 최신호에 실리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촉매 개발 역시 인공지능의 활용 가능성이 높은 분야입니다. 촉매란 화학반응 과정에서 소모되거나 성질이 변하지 않으면서 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을 얘기하는데요, 재료 후보군, 화학반응의 종류와 경로 등이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실험이나 계산을 진행해 신소재를 찾아내기가 매우 힘든 분야입니다. 따라서 AI를 활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에 적합한 분야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홍량 신 교수 연구팀은 일찍부터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하여 이산화탄소 환원용 합금 촉매 개발 연구에 인공지능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에 실험해보지 않았던 재료들에 주목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한 새로운 이산화탄소 환원 촉매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의 정유성 교수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수소생산 촉매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번 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계’ 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인데요, 기존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재 개발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소재들을 무작위로 시험하여 목적에 맞는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면, 정유성 교수 연구팀에서는 원하는 물성을 정해놓고 이에 맞는 소재를 인공지능이 설계하도록 했습니다. 이 경우 기존 방식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죠.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재 개발은 실험실 안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미 기업들도 인공지능 기반 소재 개발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LG는 프랑스의 에너지·석유회사인 토털,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및 맥마스터 대학과 ‘AI 기반 소재 개발 컨소시엄’을 결성해 공동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해당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학계와 산업계 파트너가 함께 참여하는 세계 최초의 AI 소재 개발 연합인데요, 이들은 ‘친환경 촉매’와 ‘차세대 광학소재’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소재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며 최근 인공지능은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소재가 인간과 AI의 협력을 통해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게 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