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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1일은 세계 야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로 기록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날, 미국 독립야구리그 '애틀랜틱리그'의 올스타전이 열렸습니다. 애틀랜틱리그는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에 속하지 않은 독립리그입니다. 메이저리그처럼 비싼 선수들이 뛰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프로리그입니다. 독립리그의 올스타전이 특별했던 이유는 이날 아주 특별한 실험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사람이 아닌 로봇이 한 겁니다. 7월 11일은 야구 공식 경기에서 로봇 심판이 처음 데뷔한 날입니다.
로봇 심판이라고 해서, SF 영화처럼 팔다리가 달린 로봇이 어색한 기계음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외치지 않습니다. 일단, 사람이 포수 뒤에 섭니다. 주심의 역할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선언하는 게 전부는 아니죠. 이날 주심은 브라이언 데브 로웨 어가 맡았습니다. 대신 귀에 무선 이어폰 '에어 팟'을 꽂고 있었죠. 실제 판정은 공의 움직임을 레이더 방식으로 추적하는 '트랙맨 시스템'이 맡았습니다. 트랙맨이 투구를 판단해 무선으로 전달하면, 이어폰을 통해 이를 전해 들은 데브로웨어 주심이 콜을 합니다. 로봇의 판정에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차가 생깁니다. 이 날 경기에서도 볼넷인 줄 알고 1루로 걸어 나가려다 뒤늦게 스트라이크 콜이 이뤄지는 바람에 돌아오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왔죠.
로봇 심판이 가져올 야구의 변화 방향은 뚜렷해 보입니다. 일단 오심이 사라집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기계는 엄격하게 중립적입니다. 볼 판정에는 어느 정도 심리적 편향이 작용해 왔습니다.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 다음에 들어오는 공은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이 많습니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처럼 타자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면, 다음 공은 타자에게 유리한 '볼'로 선언되는 경향이 존재했죠. 하지만 로봇 심판의 시대에는 이런 심리적 편향이 사라집니다. 최근 야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포수가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공을 잡는 기술, 프레이밍 역시 무의미해집니다. 오심이 사라지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두고 시비가 붙지 않을 겁니다. 선수나 감독의 불만이 줄어들고, 이에 따른 퇴장도 사라지겠죠. 팬들도 심판의 편파판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반대의견도 존재합니다. 전통주의자들은 인간미가 사라진, 기계적 판정이 주가 되는 야구는 '야구의 신비로움'이 사라진, 더 이상 야구라고 부를 수 없는 경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견도 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야구의 신비함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까지 로봇 심판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스포츠매체 '데드스핀'은 로봇 심판 기사를 전하며 "로봇 심판 도입은 '만약'이나 '왜'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가 되었다"고 했죠.
프로스포츠, 그 중에서도 야구는 시대 환경이 변하면서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경기시간이 길고, 멈춰 있는 시간이 많은 야구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는 게임이 'e스포츠'라는 영역을 개척하면서 스포츠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죠.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수년째 홈런과 삼진, 볼넷이 늘어나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투수와 타자 모두 힘이 세지면서 홈런에 의존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득점 방식이 되었죠. 홈런 아니면 삼진이니 점점 더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야구를 더욱 재밌게 하려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적용하기 어려우니,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시작한 거죠. 실제로 큰돈을 주고, 3년 동안 실험 계약을 했습니다.
로봇 심판은 그 실험의 일부입니다. 로봇 심판 외에도, 베이스 크기를 늘리고, 쓰리번트를 한 번 더 허용하고, 시프트를 금지하고, 투수 교체를 제한하는 등 총 9가지 규칙 변화를 실험 중입니다. 어떻게든 공이 멈춰 있는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입니다. 로봇 심판의 경우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요구하는 '공정성'의 수요에 대응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편향을 없애고, 중립적이면서도 공정한 게임 규칙을 만드는 거죠.
물론, 변화에 따른 적응 문제는 걸림돌입니다. 그동안의 익숙함과 다르다는 점에서 의심의 눈빛과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변화구의 경우, 이전에는 포수가 공을 받는 위치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공이 실제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위치를 기계가 판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볼 때 너무 낮아 보이는 공에 스트라이크 선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봇 심판 데뷔 이틀째인 7월 12일 하이포인트 로커스의 프랭크 비올라 투수코치는 '로봇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다 퇴장당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이영상을 탔던 비올라 코치는 트위터를 통해 "로봇이든 사람이든, 하여간 뭔가 문제가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로봇 심판은 야구에서 '주심'이라는 직업을 없앨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고 이에 따라 비용이 줄어들면,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리틀야구에도 로봇이 대신 서게 될 겁니다.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줄이는 건 사회 모든 영역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보다 더 중요한 건 해당 직업에 대해 갖고 있는 열정과 가치입니다. 야구 주심은 경기의 법관과도 같은 위치입니다. 애틀랜틱리그 주심 티모시 로소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스트라이크 볼 판정이 '예술'이라는 자부심으로 이 일을 해왔다. 이제 기계가 그 열정을 사라지게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계속될 겁니다. 애틀랜틱리그 소속 롱아일랜드 덕스의 월리 백맨 감독 은뉴 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실험쥐나 다름없다. 그래도 괜찮다. 어쨌든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는 거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려고 하는 중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