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구 상의 모든 에너지의 원천은 태양입니다. 지구 자체가 태양의 중력을 중심으로 생겨 난 데다가, 태양이 지난 46억 년간 보내온 엄청난 양의 열과 빛으로 지구의 자연과 생태계는 생성되고 유지되고 있죠. 심지어 석유나 석탄 같은 소위 화석연료조차도 그 원천에는 태양의 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태양이 이토록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핵융합'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핵에너지라고 할 때는, 대개 '핵분열'을 의미하죠. 우라늄 같은 불안정한 원소들은 자연 상태에서도 늘 조금씩 붕괴하면서 조금 더 가벼운 물질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라진 무게만큼의 에너지와 물질을 밖으로 내놓는데 이것을 방사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원소들을 특정한 양 이상 한 곳에 모으면 이 분열이 입자 차원에서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는, 이른바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원자폭탄은 이 연쇄반응을 최대화해서 강력한 폭발을 끌어내는 것이고, 원자력 발전은 여러 물질과 장치를 통해 반응을 안정되게 제어해서 비교적 약하고 지속적인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핵분열이 강력한 에너지원이라는 점은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방사능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방사능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이것들은 체내에 들어와 세포와 DNA 등을 변형하고 파괴하며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치명적인 암이나 유전병을 유발하곤 하죠.
핵융합의 최대 장점은 특성상 방사능의 위험이 적고 또 핵분열보다 더 강한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핵융합의 연료는 바닷물에 거의 무한정으로 들어있는 수소이기 때문에 우라늄처럼 강력한 방사능을 뿜는 물질과는 거리가 멀죠. 그리고 효율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단 1g의 수소로 석유 60 드럼에 달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핵융합을 제대로 해내기만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핵융합으로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일단 핵융합 반응은 1억 도에 달하는 아주 높은 온도에서만 일어납니다.
태양 같은 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고온이 생겨나지만, 지구 상에서 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게다가 그걸 해낸다고 해도, 이 고온 상태를 담아두고 유지할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모든 금속은 수천 도 이상만 돼도 바로 녹아 버리기 때문이죠.
고심 끝에, 핵융합로 내부의 공중에 자기를 통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띄워놓고 회전시키는 기술이 등장했는데요, 이렇게 하면 금속으로 된 벽에 플라스마가 직접 닿지 않기 때문에 녹는 것을 막을 수 있죠. 물론 지금으로서는 1억 도의 상태는 불과 몇 초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한국의 핵융합 연구장치 케이스타(KSTAR)가 2020년 3월 초고온 플라스마를 8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했는데, 5초 이상 유지하는 데 성공한 세계 최초 사례였죠. 이후 지속시간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요, 한국의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설정한 케이스타 목표 성능은 플라스마 유지시간 300초, 플라스마 온도 3억 도입니다. 결국 핵융합 기술의 핵심은 초고온을 얼마나 유지시킬 수 있느냐와, 그것을 위해 쓰이는 에너지의 양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아무리 핵융합이 효율이 좋다고 해도, 발전을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 양이 만들어진 에너지보다 더 크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투입 에너지의 양이 산출 에너지보다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커서 실용성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이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핵융합은 과연 현실적인 기술일까요? 인공적으로 태양을 만드는 것은 그저 불가능한 망상은 아닐까요?
일각에서 그런 지적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과학계 전반에서는 바탕이 되는 이론과 개발 중인 기술을 근거로 실현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핵융합이 청정에너지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는데, 핵분열보다는 훨씬 적지만 약간의 방사능이 방출된다는 점과, 초고온을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나 원자력 연료를 사용한 발전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점 등이 그 이유죠. 물론 이런 점들을 포함해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1940년대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기초로 원자폭탄을 만든 미국의 과학자들조차 핵분열 기술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세상은 원자력을 통해 무기와 발전, 엔진 등 여러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고, 지금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 있죠.
간혹 핵융합 기술의 전망과 매력에 기댄 엉뚱한 주장들이 등장하긴 합니다. 그중 가장 많이 퍼져 있는 '상온 핵융합'은 다양한 물질을 적절히 조합하면 일상적인 온도에서도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1989년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성공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은 늘 해프닝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핵융합 기술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이런 유사과학적인 접근과 정통적인 고온 핵융합의 차이를 구별하기도 어렵고, 그로 인해 때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죠. 하지만 기후변화로 화석연료의 사용을 급히 줄여야 하면서도,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그 양을 대체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핵융합 같은 새로운 에너지 기술은 분명히 큰 희망과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다양한 에너지를 손에 넣어야 하는 우리 인류로서는 크게 한 번 투자해 봐야 할 기술이 바로 핵융합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