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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오가던 명동거리. 그 한 귀퉁이에는 배우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핸드프린팅이 남아 있다. 또 한 극장 로비에서는 전지현, 김선아, 김희선, 차승원 등 유명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을 볼 수 있다.

그 중 특히, 성룡의 핸드 프린팅에 눈이 간다. 2013년 명동을 방문해 핸드프린트를 남겼던 성룡은, 명동에서 배우의 꿈을 키웠던 유일한 외국배우이다.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했던 그는, 알고 보니 젊은 시절 명동에서 2년 간 머물면서 한국, 홍콩 합작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곤 했던 경력이 있었다.

성룡의 한국생활 추억거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증명된다. 벌이가 적던 그로서는 식비를 아껴야만 했는데, 당시 동네 사람들은 외국인이 고생한다고 친절하게 인심을 베풀어 줬다고 한다. 그 덕에 적은 생활비로도 명동생활을 버틸 수 있었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정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 대한민국은 일반 시민에 대한 규제가 심했다. 그 중엔 장발단속도 있었는데, 외국인인 성룡은 단속 해당 사항이 없으니 당연히 거리낌 없이 길거리를 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경찰에 의해 연행당하는 성룡은 홍콩사람이라고 항변해 봤지만, “홍콩사람이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해?” 라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한국말을 못하는 척 했지만, 단호한 경찰 때문에 진땀깨나 뺐다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명동에서 지내며 힘겨운 무명 배우 경력을 쌓은 성룡은, 중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명동이란, 당시 수많은 배우들의 꿈의 장소였던 것이다.

 

한국영화의 고향 충무로와 인접해있는 지역인 덕에, 배우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명동. 일부러 충무로와 명동 사이를 서성거리며, 혹여 길거리캐스팅이라도 되진 않을까 기대감을 품었다고들 한다. 괜히 눈을 부라리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부러 눈을 마주쳤다던 남자배우의 일화나, 추운 날에도 일부러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던 여자배우의 일화를 들어보면, 그들이 명동에 수놓았을 수많은 꿈들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배우로서의 꿈을 꾸던 젊은이들의 염원이 담긴 명동. 이제는 성공한 배우들의 흔적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배우가 되고 싶다면, 어디 한 번 명동에서 눈을 번뜩여보는 것도 추억이 될 수 있다. 그러다 혹여 누군가처럼, 명함을 건네받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