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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 인 블랙〉기억나시죠? SF영화로서 속편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끈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그중에 본부로 나오는 곳은 미래에서나 볼 법한 아주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자랑했지요. 스필버그감독 제작 톰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Catch Me If you can 이란 영화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1960대 후반 배경을 그렸는데요. 많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주인공의 재치가 인상적이지요. 두 영화 속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뉴욕 JFK 공항의 TWA 공항터미널을 재현했다는 것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한 장소가 똑같이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희한한 일이죠. TWA공항은 60년대 주름잡던 핀란드 출신 세계적 건축가 에로사리넨의 작품인데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현상설계의 심사위원장으로 요른 웃존 설계안을 당선시킨 장본인이며 대표적인 미래파 건축가이기도 하지요. 미래 세계를 다루는 영화의 세트 이미지를 1962년에 만들어진 공항에서 차용했다는 것이 어쩌면 넌센스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에로 사리넨의 설계는 독특하고 혁신적이었던 것이죠. 과거에서 미래가 보였다고나 할까요?.영화 맨 인 블랙에서 세트 디자이너 보 웰치 Bo Welch는 첨단 기술로 포장된 기묘한 공간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는 맨 인 블랙MIB 본부, 무역박람회장 등을 실내 세트로 구축하는 데 있어서 TWA공항을 주요 모티브로 갖고 온 것이죠. 그러한 상상의 주요 모티프는 말씀 드린대로 미래파로부터 끌어온 것이었습니다. 특히 공항 근무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괴한 외계인들과 뒤섞여 실루엣을 부각하는 밝은 돔에 둘러싸인 채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는 이 본부는 미래파 건축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에로사리넨은 195-60년대 당시 우주 개척에 나서는 인류의 미래상을 그려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예전 공항이 바로 우주 기지국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죠. TWA 공항터미널을 모티프로 한 세트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복고풍 스타일에 사이버 미래형을 접목한 디자인 형태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디자인 개념입니다. TWA 터미널 지을 당시가 우리나라로 치면 타워호텔이나 남산 자유센터, 힐탑바 등이 그와 비슷한 시기의 건축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작품들도 비록 역사적인 근대 건축이지만 미래형 스타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SF 영화의 훌륭한 세트 디자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사리넨의 작품은 건축물마다 공통점이 있다기보다는 제각각 강력한 개성을 지닌 건물들이 많습니다. MIT오디토리엄과 성당, 제퍼슨기념비, 델레스 국제공항 터미널, 노스크리스챤교회 등 1940-60년대 대표적인 건축 작품이 많습니다. 이는 기능주의 시대가 지날 즈음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죠. 한때 파리에서 조각을 공부했던 사리넨은 건축을 할 때 조각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 자신은 이 공항을 디자인할 때 자몽 껍질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새에 비유합니다.
공항이란 원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한 곳. 그러니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 그리고 비행의 역동성이 새의 비상하는 모습과 흡사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도 화려한 콘크리트 곡면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하나의 콘크리트조각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라크 출생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50년이 훌쩍 지난 요즘 그녀의 건축을 통해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비트라소방서, BMW 빌딩,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건축가로서도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데요, 2013년에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항구에 지어진 교통박물관을 설계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지요. 이외 자하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을 보면 기묘한 모양의 생물체 같은 형태가 상당히 공상과학영화에 나올법한 건축 을묘 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어쩌면 미래파적인 건축학에서 출발한 건축 개념이라는 틀이 비슷해서 그런지, 현대 건축과 50여 년 전의 건축이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상징성을 내포한 다분히 표현중심적인 외관의 형태도 그렇고요, TWA의 내부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광저우 오페라하우스 등의 내부도 그 느낌은 아주 흡사합니다. 그렇다고 자하 하디드가 에로사리넨의 건축을 참고로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어쩌면 건축 사조와 형태는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패션에서 과거의 어휘가 계속 반복되어 다시 유행을 타듯이, 과거의 건축 개념도 첨단을 달리는 건축가의 손에 의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예 고전건축에서 모티브를 차용해온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지난 시간에 얘기했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인데요, 건축가 요른 웃존이 고딕 건축에 받은 영감을 살려서, 건물에 다가갈 때 그 웅장함이나 상징성은 고딕 건축과 흡사함을 느끼게 되죠. 높이 솟구친 조형 형태를 보면 고딕건축을 연상케 됩니다. 고딕건축은 12-3세기에 시작된 양식이니까 무려 약 7-80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모티브로 인용되고 차용되고 있는 것이죠.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근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성당을 보고,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빛의 교회를 설계했다고 합니다. 롱샹교회는 근대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인데요, 평소 르 꼬르뷔지에를 존경하고 흠모하던 안도 타다오는 유럽 스케치 여행을 통해서 롱 상교회를 접하게 됩니다. 특히 그 내부에 스며드는 스태인드글라스 창문의 빛를 보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빛과 건축과의 관계를 깨닫고서는 오사카에 빛의 교회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실내를 조금 어둡게 하고, 벽에 십자가 모양의 틈을 만들어 빛을 통해서 그 공간과 건축을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이미지가 흡사하지요.
60년대의 대표 건축작 TWA공항이 공상과학영화의 세트로 등장하고, 50여년이 지나 자하 하디드 같은 가장 최근의 디자인에서 묘한 공통점이 발견되고, 고딕건축의 모티브로 시작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롱샹 교회에 감동을 받아 디자인된 빛의 교회 등을 보게 되면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는 지요? 여러분 미래지향적인 건물, 혹은 혁신적인 상품을 선보이고 싶습니까? 온고지신 이란 말에 따라 옛것에서 첨단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최고의 고전이 최고의 첨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