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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조선을 휩쓸고 지나간 후, 종묘역시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 종묘는 유교사상을 숭배하던 조선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그런 종묘가 불타고 훼손 되었으니 왕이었던 광해는 얼굴을 들지 못 할 정도로 괴로웠다. 광해는 종묘를 증축하고 손보기로 한다. 당시에는 왕과 왕비를 모시는 신실이 여섯 신실로 되어있었으나 광해의 명으로 열아홉 신실로 증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종묘의 증축을 명한 광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종묘에 들어갈 없었다. 반정이 일어나 더 이상 광해는 왕으로 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묘에는 왕과 왕비, 정해진 충신만 모실 수 있게 되어있다.

선조들은 죽음 이후에도 혼이 남아있다고 믿었고, 그랬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혼이 노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종묘에 모셔진 왕과 왕비, 충신들은 그 곳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종묘는 일종의 그들을 위한 정원이고 쉼터라고 할 수 있다. 종묘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 마흔 아홉 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는 1955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제되어 보호 받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묘제례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겼다. 종묘제례에는 철저한 법도와 순서가 있었고, 매우 중요시했다. 일 년에 5회 종묘제례를 왕이 행하였는데,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에 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종묘제례악의 경우, 엄숙하고 장엄한 제례음악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제례음악이 바로크 시대에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양의 제례음악보다 200년이나 앞서 나왔다. 그 이후에 제례음악을 조금씩 다듬으며 완벽에 가깝게 완성시켰다. 종묘제례악은 엄숙함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음악의 정점이라고 평가 받는다. 모든 행사에 맞춰서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다. 종묘제례악은 국가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또한 2001년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제되었다

종묘는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언제든지 입장이 가능하다. 종묘제례의 경우는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진행된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자랑스러운 종묘와 종묘제례악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