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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규제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볼 때 저는 한국인들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해 보이기도 하죠. 예를 들면 교통신호 위반자들에 대한 처벌 같은 건데요, 행인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폭운전을 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수도 없이 봤습니다.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무거운 철제 파이프나 건설자재를 싣고 보행자 사이를 누빕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오토바이가 어린아이를 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죠.
음주운전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한국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술에 관대해 보입니다. 미국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살인죄를 적용해 최소 징역 50년을 선고하는 주가 있습니다. 브라질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살인죄로 기소됩니다. 한국보다 훨씬 규제가 강한 것이죠.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자에게 통행의 우선권을 주는 일, 음주운전이나 난폭운전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이런 일들에 있어서 규제가 엄격해진다고 통행의 자유를 잃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규제가 더 강화된다면 한국은 더욱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할 때 한국에서 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 분야는 또 있습니다. 바로 건물과 상점의 외관에 관한 규정입니다. 스위스, 프랑스처럼 도시환경이 훌륭한 나라들은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유지·보수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창문 크기, 지붕 색깔은 물론 석고나 외벽 장식 등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정이 마련돼 있습니다. 집은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인데 왜 이렇게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는 걸까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엄격한 규제는 동네의 역사적 고유성을 유지, 계승한다는 점에서 조화로운 환경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나라들은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도시환경을 유지하고 근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관광지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저는 안국동, 인사동, 삼청동 같이 역사가 깃든 동네나 한옥이 몰려 있는 곳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이런 곳일수록 한국의 멋과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그 지역의 특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엄격한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집 소유주에게도 자신의 집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정해진 기준 이하로 내버려 두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매력적인 거리를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런 엄격한 규정과 그 규정을 잘 따르는 주민들 덕분이니까요.
시골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불편하고 비용 문제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간판이나 건축과 관련된 규정이 엄격해지면 장기적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지은 건축물 탓에 한국의 전통건축이나 농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이 망쳐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만일 시골 마을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개성 있는 건축양식 규정을 정해 준수하도록 한다면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규제가 엄격해진다고 자유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규제'라고 하면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고개부터 내저을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갖가지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어떤 규제냐에 따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특히 개인의 생각이나 사상 등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교통법규처럼 타인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나, 한국 전통을 보존하면서 더 나은 삶의 공간으로 가꿔나가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강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규제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