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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감독으로서의 티에리 앙리

biumgonggan 2021. 7. 30. 11:04

오늘 말씀드릴 명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 출신 슈퍼스타 티에리 앙리입니다. 앙리는 다음 두 가지 기록만으로도 축구 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름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앙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클럽 아스널의 에이스로 오랜 기간 활약하며 228골을 터뜨렸는데, 이는 아스널의 132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골 기록입니다. 뿐만 아니라 앙리는 프랑스 국가대표 팀 역사에서도 51골로 최다 득점자에 올라있습니다. 앙리의 51골은 지금의 골잡이들인 앙투안 그리즈만, 킬리안 음바페가 앙리를 따라잡기는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앙리는 단순히 골만 잘 넣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라, 수준 높은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로 경기 전체를 지배하곤 했던 멋진 선수였습니다. 선수 생활 은퇴 이후 앙리는 영국 유명 방송사의 축구 분석 패널로서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 휘하에서 벨기에 국가대표 팀 코치로 활동하며 러시아 월드컵을 경험하기도 했죠.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앙리는 자신의 커리어 처음으로 ‘감독’ 지휘봉을 잡았던 모나코에서 선수 시절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실패를 경험하기에 이릅니다. 2018년 10월 18일 친정팀 모나코의 감독으로 선임됐던 앙리는 감독 생활 불과 104일 만에 경질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이 사례는 리더십 이슈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교훈을 줍니다.

 물론 앙리가 부임할 당시 모나코는 좋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모나코는 값나가는 유망주들의 산실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요, 레오나르두 자르딤 감독 휘하에서 계속 성장한 모나코는 2017년 파리 생제르맹을 제치고서 프랑스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대신 너무 많은 주력 선수들을 비싼 이적료를 받고 방출해온 결과 팀 전력은 급격히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올 시즌에는 부상자도 많았죠. 결국 한동안 칭찬받던 자르딤은 경질됐고, 후임으로 앙리가 도착했을 때 모나코의 순위는 18위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코는 여전히 프랑스 리그에서 강등될 정도로 나쁜 멤버로는 여겨지지는 않았기에, 모나코가 배출한 스타 앙리가 팀을 끌어올려 주기를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앙리가 경질될 때 모나코의 순위는 19위였습니다. 앙리는 리그 12경기에서 단 2승만을 거뒀습니다. 결국 자르딤이 나갈 당시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던 거죠. 우스꽝스럽게도 모나코는 앙리를 경질하면서 앙리 이전의 감독 자르딤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정합니다. 모나코 선수들은 여전히 자르딤을 더 신뢰하고 있었던 건데요. 어쩌면 성적이 떨어졌더라도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자르딤을 내치지 않는 게 애초부터 옳았을 듯합니다.

 왜 이러한 상황이 야기됐을까요? 모나코 팀 자체가 안 좋은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해프닝에 근본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바로 앙리였습니다. 앙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선수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앙리는 경기에 패한 후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만을 드러내곤 했는데요, 앙리의 이러한 태도는 선수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또한 앙리는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에 함께 나갔던 약관 20세의 선수를 망신주기도 했는데요, 회견장에서 일어나면서 의자를 도로 집어넣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일어날 때 의자를 집어넣는 게 좋은 행동이기는 하겠으나 무심코 일어난 상황에서 경험 없는 어린 선수에게 대놓고 눈총을 쏘아붙였던 앙리의 태도 역시 인자한 리더와는 거리가 멀었던 거죠. 더군다나 공식 석상에서 말입니다.

앙리의 마지막 일주일 또한 불협화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앙리는 홈에서 1-5로 대패했던 스트라스부르 전에서 상대 선수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음으로써 구단 이미지에 상처를 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리그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팀이 아닌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들은 필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죠. 그리고서 팀의 시니어 선수들 일부를 2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선수들은 더 이상 앙리와 함께 하기 어려움을 구단 고위층에 전달했고 구단은 마침내 결단을 내려 앙리를 직위 해제시켰습니다.

 티에리 앙리의 감독 생활 104일은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마감됐습니다. 앙리의 경질은 또 하나의 ‘슈퍼스타 출신 감독의 실패’로 기록되게 됐는데요. 특히 앙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슈퍼스타 출신 지도자가 지닐 수 있는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우선 앙리는 세심한 ‘감독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 자신보다 ‘하등 한’ 선수들을 데리고 뛰는 ‘에이스 선수’ 같은 인상을 더 많이 노출하곤 했습니다. 물론 앙리는 특별한 선수였고 대다수 그의 제자들은 그의 선수 시절보다 못하는 선수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리더라면 제자들의 부족함을 질타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상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골몰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이야말로 자신의 특별함이 각인돼있는 스타 출신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오류죠. 둘째로, 일부 스타 출신들은 역시 자신의 선수 시절 경험을 과신한 나머지 지도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어려운 과업에 뛰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앙리뿐 아니라 근자에도 알란 시어러, 게리 네빌 같은 유명 선수들이 이러한 행보로써 감독직에 실패했는데요.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부족한 준비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처음 해보는 지도자 업무를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매우 어려운 곳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차근차근 준비를 하면서 비교적 작은 클럽으로부터 지도자 경험을 쌓아갈 필요가 있었던 거죠. ‘조직의 에이스’와 ‘조직의 리더’는 완전히 다른 과업임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