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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재해석

biumgonggan 2021. 7. 30. 16:10

국내 최대 지하캠퍼스 ' 이화여대  ECC'(출처 : 뉴스룸)

영화〈다빈치 코드>를 보면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건축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35.42미터 정사각형에 21.6미터 높이의 화려한 유리 피라미드의 거대한 조형미에 압도되는데요. 이와 함께 지하 공간으로의 동선 이동이 더욱 눈에 띕니다. 즉 단절되어 있는 지상과 지하의 공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것이 특징이지요. 이렇듯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이 되어버렸는데요. 처음 설계안이 공개되었을 때 환영은커녕 대중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유리 피라미드의 조형성이 프랑스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국보인 루브르 앞에 죽음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꽂아놓느냐? 프랑스 사람들을 무시하는 거냐?”라고 말이죠. 그런데요, 막상 재개관 이후 루브르 박물관을 다시 찾아온 방문자들의 만족도를 본 뒤로는 반대 세력의 의견은 잠잠해졌습니다. 직접 관람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 측면도 있었지만 유리 피라미드가 품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리 피라미드가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알아보며 그 건축의 원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과거 루브르 궁전이 점차적으로 박물관으로 탈바꿈되면서 엄청난 양의 예술품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은 대대적 신축과 보수를 통해 루브르를 세계 최대 박물관을 만들자는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되죠. 공사의 핵심은 바로 루브르 궁전의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되 공간의 확장을 최대로 이끌어 보자였습니다. 건물 증축하지 않고 공간을 늘리겠다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인데요. 물리적 한계가 확실한 가운데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는 해내었습니다. 지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즉 지하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안마당을 파서 지하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86톤이라는 특수 유리의 자중自重을 견디는 최고의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을 올렸는데요. 이를 통해 루브르박물관은 개축을 거쳐 약 6만 제곱미터의 전시공간을 1989년 준공을 하면서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시청앞 광장의 4-5배 크기 정도의 면적이죠.

그동안 지상과 지하는 단절된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지상은 땅 위 지하는 땅 아래, 양지와 음지, 한 곳은 보이는 곳 한쪽은 보이지 않는 곳. 이러한 명과 암이 갈리는 대조적 차이가 명확한 곳입니다. 따라서 지하에서는 하늘을 보기는커녕 햇빛조차 느낄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인데요. 여기서 유리피라미드의 진정한 가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상과 지하의 구분을 과감히 깨트렸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유리피라미드를 통해서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쾌적한 지하공간을 얻게 되었고요, 동시에 지하에서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서 위를 올려다보면 13세기에 지어진 루브르궁전의 외관을 관람할 수 있고요, 반대로 지상에서 지하가 있음을 금방 알 수가 있지요.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새로운 공간이 유리 피 마리드를 통해서 서로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로 만들어진 입구로 박물관에 들어서게 되면 관람객들에게 마치 내가 박물관의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건축이지요. 지하공간의 존재를 지상으로 솟구치게 표현하고 있는 피라미드 형상은 지하공간을 바로 상징하고 은유합니다. 이렇게 어둡기만한 지하공간을 아름답게 표현한 건축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바로 이화여대 캠퍼스 콤플렉스ECC입니다, 이화여대는 모자란 강의실과 도서관, 상업시설까지 겸비한 시설을 캠퍼스 내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건축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안고 지명현상설계를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자하 하디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선된 도미니크 페로의 멋진 건축 작품이 선정, 2008년 개관하며 당시 학교의 고민을 참신하게 해결해주었습니다. ECC 건물은 언덕이 있는 지형을 활용해 가운데 계곡을 파고 양쪽 지하로 건물을 넣은 구조입니다.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지하의 연출입니다. 즉, 땅에 묻는 건축, 외관이 없는 건축이 되겠는데요, ECC관은 6개 층의 건물 두 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놀랍게도 6개 층 모두 지표면 아래있는 건물입니다. 원래대로라면 6개 층 모두 보이지 않는 지하에 위치한 것인데요. 하지만 관람객들은 중앙 통로를 통해 건물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나, 커피를 마시는 학생, 강의실을 향해 뛰어가는 학생 등 마치 개미집 단면을 보는 기분이 들까요? 지하 공간이라 하면 채광과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사람들이 꺼리는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ECC는 지하이지만 전혀 지하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빛의 계곡이라 불리우는 이 25m 폭의 공간 때문인데요. 덕택에 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낮에 복도 조명을 꺼도 될 정도로 채광이 잘되며 통풍도 문제없다고 합니다. 캠퍼스 경관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조형적이고 훌륭한 공간을 지닌 건축. 즉 풍경을 디자인한 명작이라 할 수 있지요. 역시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라고 불리는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답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하라고 하면 밀폐되거나 어둡고 한계만 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하는 더 이상의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 경관을 만드는 요소이자, 건축공간의 새로운 대안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눈에만 익숙해져있었던 지상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을 활용한다면 더욱더 풍요로운 도시를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았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메시지를 배웠습니다. 바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껴라!”입니다.때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개념들을 대중들이 느끼고 체감이 될 수 있도록 표현해 줄 수 있을 때 평범에서 비범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