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음식의 판도가 바뀌었다. 탕반가에서 장국밥을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무교동의 무교탕반이 크게 유명했는데, 장시가 크게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교탕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헌종(1834~1849)도 사복을 입고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서울 내 최고급 대중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양반들은 종에게 사방등(四方燈)을 쥐어준 채 드나들 정도로 이 탕반집이 인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몰려들다보면, 음식이 발전하고 시장이 번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점점 대중화 되고,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며, 일반 서민이나 보따리장수들까지 찾아와 먹게 된 것이다. 많은 보따리장수들도 이 무교동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엔 물론 소금장수도 있었다.

가격이 싼 낙지 역시 음식에 사용됐다. 1900년대 초 당시엔 낙지를 데치거나 국 끓여 먹는 게 전부였는데, 무교동낙지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박 할머니가 술안주로 시험 삼아 내놨던 매콤한 낙지볶음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이를 본 딴 낙지볶음집이 여럿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때, 무교동 장터를 드나들던 한 소금장수가 실수로 가게에 사카린을 두고 자리를 뜬다. 하지만 당시, 사카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소금장수가 놓아두고 간, 소금과 비슷하게 생긴 사카린을 아무 의심 없이 음식에 사용했다.

특유의 매콤함에 단맛이 더해지자, 손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무교동낙지의 맛은 발전했고, 다양한 시도와 함께 첨가하는 재료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실수는 세상의 많은 일을 만들어낸다. ‘하드로 불리는 아이스크림, 나일론섬유, 포스트잇, 페니실린 등도 그렇다. 낙지볶음 특유의 매운 맛에 단맛을 추가했을 때, 그 실수가 대중의 환영을 받게 된 것은 어쩌면 세상의 이치일는지도 모른다.지금은 더욱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무교동 낙지. 이제는 많은 가게들이 무교동 사거리 근처로 이전했지만, 그 맛의 명맥만은 유지하고 있다. 언제 생각해도 군침 돌게 하는 음식, 한 번쯤 직접 무교동 사거리를 돌아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옛날, 실수로 사카린을 넣었던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