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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

산업스파이의 역사

biumgonggan 2017. 1. 22. 02:00

16세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중국산 자기, 중국산 자기를 수입하는 나라는 대중국 무역적자가 발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유럽이 도자기 기술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 오늘은 최초의 산업스파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도자기 제조기술이 없었던 유럽은 중국에 최초의 산업스파이를 보내 기술을 확보하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도자기의 산지 중국 장시성에 파견된 프랑스 예수회 신부 프랑수와 자비에 당트르콜은 도자기 가마터를 방문하고, 서적을 탐톡하며 제조비법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712년 비법을 프랑스 예수회로 전송하게 됩니다. 이후 영국도 독일도 중국의 도자기 제조법을 확보하게 됩니다.

도자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비단기술을 위한 산업스파이도 있었습니다. 로마는 6세기경 중국산 비단의 인기로 로마제국의 재정이 위태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중국에 수도사를 파견하여 비단제조법을 파악한 후 대나무에 몰래 누에고치를 넣어 반출을 하게됩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산업스파이는 더욱 활개를 쳤습니다. 산업혁명시대 영국의 면공업 기술이 산업스파이에 의해 미국으로 유출되었고 영국은 이에 기술유출 금지법을 만들어 산업스파이 제재에 나서게 됩니다. 미국은 산업스파이 새뮤얼 슬레이터이 가져온 방적기계 기술로 최초의 수력방적공장을 설립하게 됩니다.

19세기 초에는 슬레이터의 공장을 모델로 미국내 면공장이 다수 설립되었습니다. 1815년에 140여개의 면공장에 약 26만명으 노동자가 고용되어 활기를 띠었습니다.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지금도 산업스파이의 활동은 만연해있습니다. 지극히 은밀한 방식의 세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산업스파이는 한나라의 흥망성쇠와도 직결될 수 있기때문에 이를 시도하려는 자와 막는 자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