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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충청남도 금산 인근의 작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오래된 고갯길을 한참 차로 달리니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처럼 보이는 수수한 집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산마루를 따라 늘어선 이 목조 가옥들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무성한 덤불과 덩굴 사이로 녹슨 파이프와 깨진 유리창이 보였죠. 80~90대 노인이 70대 노인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고령 마을이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층의 귀농이 늘고 있다지만 그곳은 60대 이하 주민을 찾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전통적인 시골 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죠.
하지만 친구 집에 도착한 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전통 가옥을 새 단장해 넓고 쾌적하게 꾸며놓은 거실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여름방학을 보내던 남부 프랑스 집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시골 마을이 유럽의 토스카나 지방이나 프로방스 지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한국의 시골 마을이 아시아의 프로방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관광 산업이 발전한 나라들은 화려하고 현란한 대도시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시골 마을 각각의 전통에 자부심을 갖고 그 역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관광 사업에 활용하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나 휴대폰, 반도체처럼 돈 벌어다 주는 효자 상품, K팝 같은 화려한 한류 문화에만 자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관광의 경우에도 백화점, 면세점이 즐비한 서울이나, 해인사처럼 크고 유명한 사찰 같은 곳에만 관심을 갖고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논둑길을 산책하는 기쁨이나 시골 된장을 맛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시골 마을에는 관심이 없지요.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가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방법은 작은 나무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로 된 큰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관광 명소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그곳만의 생활양식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지역만의 차별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겠죠. 한국 사람들은 대전을 연구단지가 몰려 있는 과학의 도시로만 생각하는데요. 대전은 과거 백제왕국과 신라 왕국 사이 경계선에 위치한 지역으로 40개 이상의 산성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입니다. 산성들은 각각 독특한 전래설화도 갖고 있지요. 하지만 성곽들은 제대로 보존이 되지 않아서 대전 사람들조차 그렇게 많은 성곽이 축조돼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모든 성곽들을 부분적으로 재건축해 관광객들이 답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면 대전은 삼국시대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화를 스토리텔링 해서 설명문을 만들어 주면 더욱 좋을 겁니다.
외국인들 중에는 관광지의 역사적 배경이나 건축물에 대한 설명, 그곳에 얽힌 옛 이야기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지역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알면 더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고 지역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겁니다. 앞으로 유명 관광지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진짜'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시간이 더 지나면 시골 마을까지 찾아오는 외국인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힐링하기, 말 타고 들판 누비기, 수백 년 된 방식으로 막걸리나 된장 만드는 것 구경하기처럼, 한국 사람들이 쉽게 지나쳐버리거나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 가옥 정비, 거리 보수 같은 기본적인 노력과 지역의 차별성을 키우기 위한 고민이 지속되어야 할 텐데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한국의 오래된 전통과 생활양식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 스스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