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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강의 기적. 도심속 비무장지대의 부활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서강대교를 건너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에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하나 있습니다. 마치 비무장지대처럼 보이는 그곳, 밤섬
두개로 나뉜 이 섬은 사실 한 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죄인을 귀양 보내던 섬으로 이용되기 했던 밤섬. 밤섬이란 이름은 섬이 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길이가 약 2.75미터로 작지 않은 섬이었습니다. 밤섬은 해방 전까지 율도정으로 서강 서부동회에 속했으나, 1968년 2월 10일 한강개발사업에 따라 폭파됨으로써 창전동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명종실록'의 기록에, 밤섬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자유분방하고,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며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또한 동성동본이나 반상을 따지지 않고 의논에 맞춰 살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마씨, 판씨, 석씨, 선씨 등 희귀성의 소유자들로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며 거의 원시공동사회체제 속에서 생활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외부로의 왕래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밤섬에 특이하게도, 대대로 전승되어온 마을굿이 있습니다. '밤섬부군당도당굿'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굿의 하나입니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로 약 6백여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오랜 기간 이어져온 것입니다. 실제로 섬 어귀 바위언덕에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1968년 여의도 개발사업으로 밤섬은 폭파됩니다. 그렇게 여의도가 생겨나고 밤섬은 사라지고 맙니다. 밤섬에 살던 약 60여세대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한 뒤에도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부군당 짓기였다고 합니다. 실향민의 아픔을 간직한 굿을 이어가며,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이란 정말 놀랍고 신비로운것같습니다. 파괴되었던 이 섬이 해가 갈수록 원래의 섬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사실입니다. 새살이 돋듯 모래톱과 갯벌이 늘어가며, 폭파로 두 동강 났던 섬도 점점 하나로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강제로 삶의 터전을 폭파당한 이주실향민들의 염원이 닿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남녀가 평등하고 모두가 의논에 맞춰 사는, 현대적 민주주의가 살아있던 과거의 밤섬. 허생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가상의 유토피아 율도국과도 한자가 같은 밤섬은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 잘 사는 것을 꿈꾸던 홍길동의 마음과도 닮아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밤섬의 자연적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한강의 기적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