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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어떤 형태로든 후대에 큰 영향을 주면서 길이길이 남기 마련이다. 영화 촬영지에서 한 지명의 이름이 될 정도의 영향력이 컸던 명작 영화 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촬영지였던 곳은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이 곳은 정릉고개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영화 아리랑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아리랑 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아리랑 고개는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곳으로 쓰이는 명칭이다. 이별과 그리움, 혹은 봇짐을 이고 지고 힘겹게 넘어가던 고개를 말한다. 우리 민족은 삶 속에서 고난과 고통의 역사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1926년 9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종로의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많은 시민들이 나운규의 아리랑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무대 앞까지 난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혼란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들이 극장 앞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운규는 이 작품에는 원작, 각색, 주연, 감독 까지 모두 혼자 맡았다고 한다. 특히 일제에 항거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 민족의식을 잘 나타내었다고 한다. 나운규는 외국의 영화를 보고 기법을 배워서 자신의 영화에 실험을 해 보곤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성영화를 기획 한 것도 나운규라고 한다.
나운규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식민통치의 억압과 수탈에 대한 저항, 통치권과 결탁한 자본가에 대한 비판에 것을 드러냈다.
아리랑고개를 지나는 도로인 아리랑고개는 돈암사거리를 기점으로 하고 동소문동 과 돈암동을 지나 아리랑시장 앞까지에 이르는 폭 15m, 길이 1,450m의 도로이다. 지선도로인 아리랑고개는 서울시내에서 대로나 로·길이 아닌 고개로 불리어지는 유일한 도로이다. 그만큼 아리랑고개는 유서 깊고 우리에게 친근한 고개로 남아 있다. 한편 성북구에는 1997년 9월에 조성된 영화의 거리가 있다. 역대 영화 포스터들과 비석이 이 곳이 영화에 거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아리랑고개를 영화전문거리인 영화의 거리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영화의 거리는 나운규가 이 고개에서 영화 아리랑을 촬영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