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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그리고 활주로로, 수돗물정수장으로 이제는 시민의 휴식공간이 된 선유도
영등포에 인접해 양화대교 옆에 떠 있는 선유도가 본래 섬이 아니라 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선유봉이라는 '산'이 선유도라는 '섬'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서울시의 개발을 위한 선유도의 고마운 희생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라는 이름처럼 원래 선유도는 빼어난 절경과 풍류를 자랑하던 봉우리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이 즐겨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눈에 띄는 봉우리여서였을까. 혹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바위의 쓰임새가 좋아서였을까. 이렇게 아름다웠던 선유봉은 서울 발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 시작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며 시작한다. 홍수에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제장이 축조되었는데, 거기에 사용될 암석을 선유봉에서 채취하게 된 것입니다.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봉우리가 제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봉우리의 흔적은 남아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이르러 여의도 경비행장 건설을 위해 다시 선유봉에서 모래와 자갈이 채취되면서 아름다운 봉우리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평지에 가까운 땅으로 변모하게됩니다. 다시금 선유봉은 여의도 비행장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봉우리를 잃은 뒤에는 1960년 제2한강교 건설과 한강개발사업을 통해 선유봉은 육지와 완전히 분리가 되어 섬인 선유도가 되고 맙니다.
서울시민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육지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선유도의 희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선유도는 서울 서남부 지역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그 용도가 바뀌어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2000년 12월 정수장이 폐쇄된 이후에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휴식 공간으로 자리를 잡게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내어준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마지막으로 밑 둥밖에 안 남은 자기 위에 앉아 쉬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홍수를 막는 제방으로, 그리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로, 그리고 강 개발을 위해 섬이 되어 수돗물 정수장으로, 그리고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그 모습을 바꿔온 선유도의 역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오르게 합니다. 더 이상 봉우리를 볼 수없는 지금 모습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를 떠올리지만, 선유도의 희생으로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게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