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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족발집에 방공호가 있다? 얼핏 생뚱맞은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장충동엔 일본 장교들이 많이 살았는데,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폭격에 대비하는 방공호를 만든 것이다. 그 방공호가 현재는 한 족발집의 새우젓 저장고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에는 의외로 이렇게 군사용도로 만들어진 시설들이 다수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소이탄 폭격이었다. 당시 일본과 조선에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불이 번지는 소이탄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서울은 동서축을 기본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상황. 일본의 대응은 동서 방향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중간 중간에 집을 허물어 공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장소가 현재의 세운상가 터다.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사이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공호가 있다. 조선총독부 직원들의 피난용 방공호로 추정되는 이곳은 110여 미터 길이에 20개 정도의 방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민방공 훈련 때 한국통신이 이곳으로 이전 훈련을 했다. 앞으로 문화재를 보관하는 수장고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서대문구 홍은동 사거리에 있는 유진상가도 군사시설이다. 만약 북한군이 구파발 쪽으로 남침해올 경우 이곳은 서울의 진입로가 된다. 유진상가는 1층 기둥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서 탱크 진지 공간을 마련하고, 후퇴 시에 한쪽 기둥만 폭파하면 건물이 주저앉도록 설계해서 적의 진격로를 막으려고 했다.

남북 대치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강남 개발일 것이다. 1968년 북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한 ‘1.21사태와 미군 정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에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울진과 삼척에서는 북한 무장군인들이 침범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한다. 서울의 동부나 서부 지역을 확장하려는 계획 대신 한강 아래에 있는 강남을 개발한 것은 이런 정부의 군사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서울은 이렇게 군사적인 목적을 고려한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진 도시이다. 전쟁을 빼놓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서울에 이런 군사시설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런 시설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군사분계선을 두고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