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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해석

biumgonggan 2021. 7. 30. 17:46

서양미술이 동양의 미술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점은 서양미술 속의 음식입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류, 갓 잡은 새, 물컹물컹한 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과일과 케이크 등등 온갖 먹을거리를 실감나게 묘사해 왔습니다. 왜 서양미술은 그렇게 음식식사에 탐닉했을까요?

먹는다는 것은 생존의 기본 요소이지만 식사는 정서적인 소통 행위이며 종종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즉, 원초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행위인 거죠. 서양미술이 음식과 식사를 묘사해온 방식을 통해 서구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그림은 최후의 만찬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수난을 겪기에 앞서 사도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식사입니다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종교적인 예식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을 결정할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요? 평소에 먹을 기회가 없었던 값진 음식을 선택할 수도 있고, 자주 먹어서 친숙한 음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만찬의 메인 디시로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는 그 자리에 등장한 빵과 포도주에 대해서만 언급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리저리 추측을 해 왔습니다. 이 날은 유월절(파스카)에 해당했는데, 유월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었고, 새끼 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따라서 예수와 사도들의 식탁 위에 놓인 것은 양고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딱히 정해진 바는 없기 때문에 시대와 화가에 따라 그림 속 최후의 만찬에 놓인 메인 디시는 이리저리 바뀌곤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메인 디시로 물고기가 곧잘 등장합니다. 물고기는 일찍부터 예수를 상징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른바 ‘오병이어’의 기적이 언급되고, 예수가 베드로를 처음에 사도로 받아들였을 때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한 말도 유명하지요. 또한 물고기 자체가 예수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탄압받던 시절에 기독교도들은 물고기 모양을 암호로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그리스어로 썼을 때 머리글자들을 합치면 그리스어로 ‘물고기, 익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만찬이 기독교 미술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던 것은, 이 만찬이 뒷날 기독교 예식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이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받아먹어라. 이 빵은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이 때문에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행위는가톨릭의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톨릭에 반대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는최후의 만찬 때 빵과 포도주에 대한 예수의 언급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가 자신의 몸과 피를 ‘약속의 징표’로서 남긴다는 선언이라는 것이었죠.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은 수없이 많은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뒤러가 판화로 만든 최후의 만찬 장면은 좀 다릅니다. 식탁에는 포도주 잔만 하나 놓여 있고 빵은 바구니에 담겨 구석에 밀려나 있죠. 작품에 예술가의 종교적, 사상적 입장이 분명하게 반영된 예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으로는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이 가장 유명합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때까지 ‘최후의 만찬’을 그려온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려는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이전의 ‘최후의 만찬’들을 보면 한 가지 뚜렷한 강박이 느껴집니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를 분명하게 보이려는 것이지요. 가장 단순하고도 흔한 방식은 성인을 나타내는 표시인 후광을 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유다는 그가 지은 죄에 걸맞은 몸짓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비잔틴 미술에서부터 전성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의 몸짓은 몹시 불경합니다. 예수의 앞에 놓인 ‘메인 디시’에 감히 손을 뻗고 있는 것이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약간 앞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라는 화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1480년)을 보면 심지어 유다는 후광이 없는 모습인 데다, 예수와 나머지 사도들이 테이블 뒤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과는 달리 테이블 앞쪽에 따로 앉아 있습니다. 마치 교실에서 벌을 받으러 불려 나온 초등학생 같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세계의 화가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유다를 구별 하는데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중에 나를 팔아넘긴 이가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도들이 놀라서 법석을 떠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다른 어느 순간보다도 유다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순간이지만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는 유다를 얼른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유다는 다른 사도들과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는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도 후광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후광으로 구별할 수도 없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종교적인 주제를 내세우면서도 식탁 위, 마지막 식사를 통해 인간 집단을 휘감는 감정의 파동을 눈앞에 펼쳐지는 드라마처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이런 레오나르도에 비하면,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그림에 반영했던 뒤러는 순진한 셈입니다. 미술의 주제는 중세 이래 아직 종교에 붙잡혀 있지만 종교라는 명목 아래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표현할 길을 모색했고,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그 길의 맨 앞에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