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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정물화의 등장

biumgonggan 2021. 7. 31. 09:51

서양의 회화에 담긴 의미를 읽는 건 녹록지 않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뿐 아니라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역사와 신화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한데 17세기 이후로 발전한 정물화부터 조금 달라집니다. 얼른 봐도 이들의 시대상과 흐름을 잘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죠.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테이블 위에 음식이 차려진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여기저기 구겨진 식탁보 위에 접시와 잔, 나이프, 그리고 여러 종류의 음식과 과일이 놓여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청어와 와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의 아침 식사 메뉴였습니다. 생선이 사순절 음식이고 와인이 그리스도의 피를 암시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그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 대신에 맥주가 놓이기도 합니다. 와인이 남유럽의 술인 것과 달리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맥주도 많이 마셨기 때문이지요.

그림 속의 그릇과 잔은 저마다 재질이 다릅니다. 유리잔도 있고 금속잔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주석으로 된 접시도 있습니다. 사실 물건의 재질의 차이를 붓과 물감으로 표현하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빛이 그 물건의 표면에 닿아서 반사되는 느낌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림 전체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네덜란드 화가들은 과일도 아주 정밀하게 잘 그렸습니다. 레몬을 돌려가며 깎다가 만 모습은 절묘합니다. 촉촉한 과육과 오돌토돌한 껍질이 멋지게 대비됩니다. 그야말로 감각이 주는 쾌락을 최대치의 기교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전까지 사물의 재질을 이렇게까지 실감 나게 재질을 묘사한 그림은 없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등장했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은 인물과 사물을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그래도 주된 주제는 기독교였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여타 기독교 전설 속의 성인과 일화가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르네상스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자 아예 기독교와는 얼른 상관없어 보이는 이런 그림들이 나온 것이죠.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물질적인 욕망을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물질에 대한 찬양을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바꿔 말하면 아주 탐욕스러운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들 정물화를 찬찬히 보면 분위기가 묘하게도 어둡고 부정적입니다. 그림이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을 줍니다. 배경이 어둡고 몇몇 그릇들이 쓰러져 있기 때문이죠. 이따금 깨진 유리그릇도 등장합니다. 당시의 이런 정물화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바니타스입니다. ‘바니타스헛되다라는 라틴어입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의 첫 문장인 헛되도다,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 그림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세상의 온갖 사물이라는 게 얼른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음식은 먹음직스럽지만 며칠만 지나면 부패할 것입니다. 과일도 실감 나는 만큼이나 금방 시들고 썩을 것이기에 위태롭습니다. 그릇들은 꽃이나 과일처럼 빨리 없어지지는 않겠죠. 그래서 쓰러진 모습으로 묘사하거나 깨진 유리잔 같은 걸 끼워 넣은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감각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악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시계, 방금 촛불이 꺼져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초, 심지어 해골도 등장합니다. 이따금 책도 그림에 등장하는데, 책은 인간의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모든 게 변하고 사라지고,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까 속세의 재산이나 쾌락이 덧없고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경건하게 신을 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세상사가 그렇게나 덧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그림을 공들여 그릴 이유가 있을까요? 만사 의욕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만사 허무하다는 관념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역설적인 회화가 바니타스입니다. 바니타스의 배경에는 인간의 죄를 강조하고 윤리적으로 엄격한 입장이었던 칼뱅주의 신학이 있습니다. 상업이 발달하고 물질적 조건이 좋아지면서 유럽인들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호사스러운 물건이 가득 담긴 정물화를 집에 걸어놓고 대리 만족을 하고, 인생의 목표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윤리와 명분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 속에서 물질적 욕망과 종교적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에서는 보데곤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정물화가 유행했습니다. 음식을 비롯한 생활 속의 소품만 덩그러니 그린 그림입니다. 원래 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가(bodega)’에서 나온 말입니다. 술집을 비롯한 공간에 음식이 놓인 모습과 그걸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서민의 생활을 그렸던 그림이 정물화로 발전한 것입니다. 수도사이기도 했던 화가 수르바란이 특히 이런 그림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가 그린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은 나란히 놓인 정물들이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레몬은 봄에 열매를 연다고 해서 부활절을 의미하고 오렌지는 순결을, 물이 채워진 컵은 정결함을, 장미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분명한 의미를 읽어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후안 산체스 코탄이 그린 <모과, 양배추, 멜론, 오이가 있는 정물>은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놓인 야채와 과일들이 긴장감과 경건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야채와 과일을 줄에 달라 매달아 놓은 것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조금이나마 더 오래 보존되도록 했던 방식입니다. 네덜란드의 정물화처럼 감각을 일깨우고 자극하기보다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금욕적인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그림 자체가 하나의 기도, 종교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 한 개, 물고기 한 마리 이처럼 일상 속의 음식들, 사물들을 그린 그림은 얼른 보기에 주제가 단순합니다. 하지만 여러 방향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죠. 사물 자체가 의미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 오늘 바니타스를 통해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