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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성 안에는 무덤을 세울 수 없었다. 때문에 시체들은 광희문과 소의문을 통해서 도성 밖으로 내 보내곤 하였다. 광희문은 도성의 사소문 중에 남쪽에 위치한 문으로 광명의 문 이라는 뜻이지만 시신을 내 보내며 가족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이렇게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하여 광희문은 시구문, 저승문, 황천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시구문 밖은 자연스럽게 공동묘지가 형성 되었고,주변으로는 무당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무당들은 망자들의 한을 달래는 굿을 많이 열었고 시구문 밖은 무당들의 굿판과 가족들의 곡소리가 가득했다. 이렇듯 시구문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문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시구문에 영험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시구문의 돌가루를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 다는 소문이었는데, 이 소문은 어느새 조선팔도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시구문의 돌가루를 긁어 가려고 너도 나도 모여들었다. 특히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시구문의 돌가루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대신하는 말일 정도였다고 한다.
시구문의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얻게 된 것은 세상의 어떤 병도 시구문이 겪은 고통보다는 못하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시구문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묵묵히 지켜 왔다. 그런 시구문이 견딘 고통은 어느 병의 고통에 비할 수가 있을까.
시구문의 본래 이름인 광희문은 태조 5년에 축성된 한양도성의 사소문중 하나이다. 현재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 시민들이 보는 광희문의 모습은 73년에 새로이 복원된 상태이다. 광희문은 처음 축성되었던 장소보다 약 15미터 남쪽으로 옮겨져 복원되었다고 한다. 한양 도성의 사소문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광희문을 본다면 조금 더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