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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성대학교’.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서울대학교를 부를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지리적으로 서울대와 인접해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별이 떨어졌다는 뜻의 낙성대(落星垈). 이곳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외적을 물리친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구주대첩의 영웅,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의 탄생지이다. 그는 특유의 배포와 기상으로 일찍 입신양명했으며, 송나라 사신이 그의 관상을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강감찬 장군의 배포를 알 수 있는 구전설화. 그가 소년의 나이로 한 고을의 원님이 되어 부임했을 때, 어린 그를 본 관속들은 공연히 얕잡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강감찬은 관속들을 불러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집어넣어보라고 명한다. 관속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 때 강감찬은 불같은 호통을 쳤다. “겨우 1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 이렇게 해서 관속들의 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강감찬이 태어난 옛터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의 생가가 있던 곳에 낙성대라는 글자를 새긴 기념비와 삼층탑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정기를 없애기 위하여 탑의 위층을 빼어갔으며, 탑 안에 있던 보물도 모두 훔쳐갔다고 한다. 또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고,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까지도 부수어 놓았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1964년 탑을 보수하고, 1972년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하였다. 19731974년에 장군의 나라를 위한 슬기와 용맹을 안보(安保)의 의표로 삼게 하고자 출생 유적지를 정화하여 낙성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새로 사당과 부속건물을 신축하고, 원래 이곳에 있던 석탑을 옮겼다. 그리고 그 옛터인 여기에는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이곳이 강감찬이 탄생한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현재 낙성대공원은 강감찬장군의 기마 청동상으로부터 명장의 기상을 느낄 수 있고, 시민들은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하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 있으며, 울창한 숲과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으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공원 인근의 도로는 벚나무가 늘어져있어, 벚꽃 피는 계절엔 그야말로 절경이다.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이곳 낙성대공원은, 오랑캐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강감찬 장군의 배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