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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biumgonggan 2017. 2. 14. 22:24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기와집과 초가집이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라 한 것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마을 동쪽에 위치한 화산에서부터 이어져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비롯하여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99년에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하회마을을 다녀갔다. 양동마을은 경주시 중심시가지에서 동북부인 포항 쪽으로 약 16㎞ 떨어진 형산강 중류지점에 있다. 처음 월성양동마을이었으나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면서 경주양동마을이 되었다. 마을 내에는 보물 3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도지정유형문화재 4점, 도지정민속자료 1점, 도지정기념물 1점과 문화재자료 1점이 있다. 마을 서쪽에는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고, 북동쪽에는 비교적 큰 한계저수지가 있다.

마을은 약 520년 전 손씨의 선조인 손소(孫昭)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살던 장인인 풍덕유씨 유복하의 상속자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월성손씨의 종가를 지어 번성하게 되었다. 현재 풍덕유씨의 후손은 절손되어 외손인 손씨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손씨의 딸은 이 마을의 여강이씨 이번에게 출가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정립의 선구적 인물인 이언적을 낳아 번성하게 되었다. 손씨는 이씨의 외가이면서 상호통혼을 통하여 인척관계를 유지하고 마을 대소사에 협력하여 왔다. 현재 양동마을에는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가 남아 양대 문벌을 이루는 동족집단 마을을 계승하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ㅁ자형이 기본형이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을 보이고 있다. 주택의 규모는 대체로 50평 내외이고, 방은 10개 내외이다. 강동면의 양동마을은 조선 오백년의 양반문화와 현대문화가 함께하는 지역으로 8·15해방 직후까지도 양반집마다 한집에 평균 한집반씩 노비집이 딸려 있어 가랍집·하배집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모두 밭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짙게 남아 있어 매년 4, 10월에 선조를 제향하는 의식을 마을 공동으로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