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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리버풀 명장 클롭 감독

biumgonggan 2021. 7. 30. 11:18

18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현재까지도 잉글랜드 클럽들 중 가장 많은 유럽 챔피언에 등극해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을 자부하는 클럽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리버풀입니다. 그러나 리버풀은 지난 10여 년 간 우울한 시절을 보내왔습니다. 2012년 가장 작은 대회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던 것을 제외하면, 리버풀은 2007-08 시즌부터 지금까지 단 한 개의 큰 트로피도 거머쥐지 못했습니다. 여섯 시즌이나 4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던 아픔도 겪었고, 90년 이후에는 리그 우승도 전무한 상태죠. 그러나 근자에 리버풀 팬들은 우울함을 벗어던지고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활기찬 리더 위르겐 클롭 감독 덕분입니다.

클롭의 선수 커리어는 ‘그저 그런’ 2부 리그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수 시절부터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서 미래의 좋은 지도자 감임을 예견케 했습니다. 은퇴와 더불어 2부 리그 마인츠의 지휘봉을 잡은 클롭은 마인츠를 사상 처음으로 분데스리가에 승격시키기도 했죠. 그러나 그를 세계적 명장 대열에 올려놓은 시기는 역시 도르트문트 시절인데요, 도르트문트는 1997년 유럽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던 명문이지만 이후 최악의 재정 위기가 도래하며 2005년에는 파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인건비 충당을 위해 숙적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200만 유로를 빌리기까지 했으니 당시의 위기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선수들을 헐 헐값에 다른 클럽으로 넘겨야만 했고, 강도 높은 긴축 속에 팀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도르트문트에 2008년 마흔을 갓 넘긴 클롭이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클롭은 가망이 없어 보였던 도르트문트에 부임 3년 만인 2011년, 깜짝 놀랄 만한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선사합니다. 2012년에는 리그 2연패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독일 FA컵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5-2로 누르고서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컵’ 2관왕을 차지하죠. 아마도 도르트문트 팬들은 당시의 환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2013년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통쾌하게 무찌르고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해 바이에른 뮌헨과 대결,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유럽 챔피언을 목전에 두고 패퇴하긴 했지만 도르트문트의 ‘다이내믹 축구’는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2015년 10월, 이번에는 실망을 거듭해온 리버풀이 클롭의 정착지가 되었는데요, 물론 클롭은 아직 리버풀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축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이전의 리버풀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적인 경기력과 성과를 일궈왔습니다. 특히 2015-16시즌 친정팀 도르트문트와의 대결에서 3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3골을 퍼부으며 4-3 대역전승을 거둔 사건은 쉽사리 잊히질 않습니다. 0-2로 끌려가던 하프타임에 클롭은 “너희들의 손자들에게 이야기해 줄 있고 팬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보자”라고 크게 뒤지고 있는 리버풀 선수들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도르트문트, 비야레알을 연파한 리버풀은 이 시즌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죠. 또한 2017-18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강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두 경기 합계 5-1이라는 예상 밖 승리를 거두고 역시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거머쥡니다. 이제 많은 전문가들은 클롭의 리버풀이 조만간 큰 트로피를 차지할 만한 팀이라 평가하고 있죠.

클롭의 축구는 시대적 트렌드의 선두주자로 손색이 없으리만치 빠르고 강렬하면서도 전술적입니다. 클롭은 자신의 축구를 ‘헤비메탈’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한 시대를 풍미해온 점유율 축구가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같이 유려하지만 다소 지루한 것을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클롭이 선도한 트렌드인 ‘게겐 프레싱(카운터 압박)’은 볼 소유권을 잃을 경우 곧바로 고강도 압박을 가해 볼을 다시 빼앗아 빠르고 효율적으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전술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활동량과 템포가 요구되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크게 소모될 수밖에 없지만, 제대로 구현될 경우 팬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만족감을 주는 매력적인 축구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멤버가 더 화려한 강팀들을 잡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인 전술이지요.

그러나 클롭의 리더십은 전술적 역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클롭의 가장 큰 재능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받는 솔직함과 친근함에 있습니다. 리버풀의 아담 랄라나는 “클롭을 위해 뛰고 싶고 죽고 싶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보스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클롭은 고래고래 고함치며 심판에게 항의하기도 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종종 취하기도 합니다. 경기가 끝날 때 가장 먼저 뛰어나가 선수들과 포옹하는 지도자이고,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며 공중 점프 세리머니를 선보이면서 관중들과 같이 호흡하죠. 그런데 이 모든 행동들이 계산된 것이 아닌 진솔함의 발로처럼 보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수들은 클롭과 함께 뛰는 것처럼 느끼고, 관중들은 클롭을 보며 매우 즐거워합니다. 클롭은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며, 선수들과 전혀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또한 클롭은 자신을 “스페셜 원”이라 칭했던 조세 무리뉴와는 달리 자신을 “노멀 원”이라 말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기적의 마법사가 아니라 헌신과 열정을 지닌 우직한 남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선수들과 팬들은 그의 이러한 점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권위적이거나 가식적인 리더는 현대 사회의 조직체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솔선수범하는 열정과 헌신으로 구성원들의 자연적 신뢰를 이끌어내는 리더, 구성원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는 리더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적합한 리더라도 생각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전문적, 창조적 역량까지 지니고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