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주역사지구는 경주 일대 2,880ha에 달하는 지역으로 크게 경주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능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로 구분할 수 있다. 경주 남산지구는 인용사지·천관사지 등 각종 절터와 신라미술을 대표할 만한 불상과 불탑이 산재해 있는 일종의 노천박물관이다. 즉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등 보물 13점과 사적11곳, 지방유형문화재 13점 등이 집중되어 있어 신라의 역사와 문화와 신앙이 결집되어 있는 일종의 성스러운 산이다.
월성지구에는 국보로 지정된 첨성대를 비롯하여 계림 등 사적 4곳이 산재해 있다. 월성은 흙과 돌로 쌓은 둘레 2,400m의 신라 도성으로 반달모양이라 하여 반월성 혹은 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한다.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써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주위에는 안압지, 첨성대, 석빙고 등이 있다. 천문을 관측하던 첨성대는 높이 약 9.5m로 선덕여왕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석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원통모양으로 쌓아 올렸다. 유리병과 같은 형태로밑 부분이 굵고 위로 올라가면서 가늘어지는 이 독특한 모양은 신라인들만의 건축기술에 의한 것이다. 첨성대 제일 위쪽 부분에 있는 井자 모양의 2단으로 된 돌기둥은 첨성대가 1,300여년 동안 손상되지 않고 잘 견뎌올 수 있었던 비결로서 신라 건축술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능원지구에는 신라 미추왕릉 등 왕릉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경주의 고분은 평지에 봉분이 있는 것만도 155기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능원지구인 황남동고분군에는 미추왕릉을 중심으로 약 20여기의 고분이 집중된 가운데 천마총 · 황남대총 등이 있으며 고분공원으로 지정될 정도이다. 155호분인 천마총과 제98호분인 황남대총은 1970년대에 발굴되어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중 천마총은 발굴 뒤 내부를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신라 왕릉의 내부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금관총에서는 1921년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 신라금관이 출토되어 호화찬란한 신라 궁중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황룡사지구에는 분황사 석탑을 비롯하여 신라 최대의 가람인 황룡사지가있다. 황룡사지는 신라 24대 진흥왕 때 처음 세웠던 절터로 1238년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절터를 발굴한 결과 높이가 90m에 달하는 9층 목탑이 있었고, 동서 288m, 남북 281m 넓이의 거대한 절터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분황사석탑은 높이가 9.3m의 모전석탑으로써 634년 선덕여왕 때 분황사의 창건과 동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넓은 기단 위에 3층의 기단부가 남아 있으며, 여러 차례 보수가 되어 어느 정도까지가 원형인지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탑신부의 4면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입구가 있으며, 문 좌우에는 인왕상을 조각하여 7세기경의 조각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산성지구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명활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둘레가 약6,000m이며 대부분이 허물어져 있다. 주위의 남산성·선도산성·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방어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던 중요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405년(실성왕 4) 4월 왜가 명활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시대 천년의 고도로서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산 및 왕경유산이 잘 보존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기념물지구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