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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복원공사 시작 전 마지막 모습을 담아왔습니다
경복궁 서쪽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적 제121호(1963년 1월 21일 지정) 2011년 7월 28일 사적의 정식 명칭은 '사직단'
사직은 조선시대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토지신인 국사신(國社신)과 곡물신인 국직신(國稷신) 두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사직단은 태조가 한양 천도 후 좌묘우사에 따라 종묘와 함께 가장 먼저 설치한 도성 시설물이었습니다(1395년 4월)
우리의 얼이 깃든 사직단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크게 훼손됩니다.
그 후 수리와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일본이 1908년 제사에 관한 시설을 철폐시키면서 제사가 폐지되었고 1911년 사직단과 일대의 토지가 조선총독부로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사직단의 격을 낮추기위해 1922년 사직단 주변에 도로를 개설하고 공원을 조성하면서 부속건물들을 철거하게 됩니다. 그 후 사직단은 점점 그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었네요. 조성 당시 13채의 전각이 조성되었지만 현재 사직단과 안향청만이 남았습니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사직단 정비사업이 추진되어 일부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직단은 현재 2012년 1월 1일부터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직공원이라고 부르는 '사직단' 앞으로는 사직공원이라고 불러서도 않되지만 부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직단을 한번 둘러보고 왔습니다.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되는 사직단. 앞으로 복원공사를 통해 어떻게 바뀔 지 복원 전의 사직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아 봤습니다. 사직단의 정문은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단층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으나 왜란 후 재건되었구 1962년 도시계획실시에 따라 그 위치도 14미터 가량 뒤쪽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사직단 대문은 2014년 11월 20일 오후 음주운전자의 차량 돌진 사고로 한번 더 훼손되기도 합니다.
국보 제1호 남대문도, 보물177호 사직단도 어느 한사람의 과오로 훼손되버리는 걸 보면 문화재 관리가 매우 취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것도 능사는 아닌 것 같고.
입구에 설치된 사직단 안내도. 이 안내도에 있는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 아닙니다. 앞으로 복원 될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직단 바로 앞쪽에도 안내판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직단 안 쪽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밖에서 들여다 보았습니다
사직단 뒤쪽으로는 '대한민국 어머니 헌장상'과 '율곡이이선생상'과 '신사임당상'이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사직단의 복원 공사시작이 임박한 시점 제대로 된 복원으로 대한민국의 멋진 문화유산으로 재탄생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