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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조봉암, 방정환, 이중섭……
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묘소는 어디일까? 국립묘지? 효창공원? 놀랍게도 망우리 공원이다. 망우리 공원은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렸던 묘지로 서울의 대표적인 공동묘지였다.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혐오 공간이었던 이곳에 애국열사들과 유명인의 묘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자.
망우리 묘지는 서울 중랑구와 구리시의 경계인 망우산 일대에 조성돼 있다. 1933년 경성부립묘지로 조성한 이곳은 약 40여 년 동안 공동묘지로 기능했다. 1973년 분묘가 가득 차 포화상태로 폐장될 때까지 무덤은 2만8500여기에 달했지만 이후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현재는 8415기만 남아 있고, 현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도시 숲을 위한 조경이 시작되었고, 1997~1998년 공원화 사업을 통해 ‘망우리 공원’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더불어 공원에는 애국지사와 유명인사 15인의 묘역을 중심으로 5㎞ 남짓한 ‘사색의 길’ 순환로가 조성되고, 그 넋을 기리는 연보비(年譜碑)가 각자의 묘지 근처에 세워졌다. 망우리 공원에는 시인 박인환과 한용운, 화가 이중섭, 소설가 최서해, 독립운동가 조봉암, 아동문학가 방정환 등 많은 애국지사와 유명인이 잠들어있다.
그 중에는 안창호 선생도 있다. 안창호의 묘는 1972년 도산공원이 조성되면서 그곳으로 이장됐지만 1938년 그가 남긴 유언이 발견되면서 선생의 석비가 다시 망우리 공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망우리 공원에는 안창호 선생의 비서였던 유상규의 묘지가 남아 있는데, 도산 안창호가 자신의 애제자 유상규가 있는 망우리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소박하게 동지 곁에 묻히고 싶었던 선생의 뜻을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김구 주석의 최측근이었던 박찬익의 묘는 1993년 국립묘지로 이장됐지만, 망우리 묘터에 시인 조지훈이 글을 쓴 비석이 남아 있다. 임시정부에서 법무부장과 국무위원을 지낸 박찬익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겠다’며 효창묘원에 모시겠다는 동지들의 청을 거절하고 이곳에 묻혔다. 끝내 서민의 묘원에 묻히기를 원한 독립유공자의 뜻이었다.
망우리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왕릉 터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 고개에 올라 “이제야 근심(憂)을 잊겠노라(忘)”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며 서민들 옆에 잠들었던 유공자들이 이제는 근심을 거두고 편히 잠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