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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고종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자주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런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점은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고종이 덕수궁을 중건한 이후 정동길에 세운 손탁호텔에는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동길에 카페가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정동은 서울 안에서도 고풍스런 서양건축물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곳입니다.
서구 열강들의 공사관이 설치되면서 철도와 전화, 신문 등 서양의 문물과 문화가 처음 들어온 흔적들 때문입니다. 1883년 미국 공사관이 처음 정동에 들어서면서 정동은 서양세력의 근거지가 됩니다. 미국의 뒤를 이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의 공관이 정동에 차례로 들어서게 됩니다. 뒤이어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은 정동은 선교와 교육, 의료활동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로 인해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서양식 교육기관과 종교시설, 의료시설 등도 잇달아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손탁호텔은 1902년 세워진 서양식 호텔로 당시 한양에 체류 중이던 독일인 한국어 통역가 '안토니트 존탁' 에게 운영을 맡겼기 때문에 그녀의 한국식 이름을 따서 손탁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고종은 덕수궁 옆 황실 소유의 토지를 하사했고 25개의 객실은 갖춘 2층짜리 호텔을 짓게했습니다. 이곳의 1층에 서울 최초의 카페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정동구락부 다방' ※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손탁호텔이 아직까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종황제는 손탁호텔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커피를 즐겨마셨는데 커피에 독을 타 고종과 황태자를 독살하려 했던 독살미수 사건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 최초의 커피 기록은 1895년 유길준<서유견문>에 등장합니다. "1890년경 커피와 홍차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되었다.
※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했던 러시아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맛봤다고 합니다. 손탁호텔을 통해 대한제국이 외래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개방성을 널리알리고 그 개방성을 힘으로 삼아 자주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될 수 있겠습니다.
현재의 정동은 유서 깊은 근대유산을 소개하고 전해주는 박물관, 전시관, 미술관이 들어서서 근대문화유입 당시의 활발한 교류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동길에는 지금도 많은 카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외국의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가 들어서지 않았다는 점은 반갑게 느껴집니다.
▲ 1999년 한국 최초 스타벅스매장 (이화여대점) 고즈넉한 주말 오후, 고종이 맛보았을 커피를 정동길의 카페에서 맛보며 세계도시로 변모한 서울의 현재를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