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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1위 국가
196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가”라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후진국이 새마을운동 정신으로
부지런히 경제성장을 일구었고,
그것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새롭게 알렸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기적의 나라가
지금은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은 취직난을 겪으며
스펙 쌓기에나 열을 올리고 있으며
중년들은 늘 위태롭게 직장을 다니고 있고
노년들은 노후 준비가 덜 되어 있어
미래가 두렵기만 합니다.
국민들은 불안과 불행에
사로잡혀있습니다.
OECD 국가 중 9년 연속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동이열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불행한 나라였을까요?
공자의 7대손인 공빈이 정리했다는
「동이열전」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었으니 이를 동이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태어나니
아홉 부족 구이가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 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선부자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떻습니까? 공자가 살고 싶어 했던
위대한 나라였습니다.
과거와 지금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렇게 문제일까요?
먼저 동이는 서로를
존중하는 나라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양신화
등을 보면 신이 인간을 질투해
죽이고 인간도 인간을 시기해
죽이는 살육이 넘쳐납니다.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죠.
허나 단군 신화는 어떻습니까?
하늘의 신인 환웅도
인간 사회에 내려와 살기 원했고
천적이라 볼 수 있는
곰과 호랑이도 같은 굴에 살면서
대립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상생이 넘쳐나는 나라였지요.
사회를 지탱할 수 있었던 근본 바탕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를
지탱할 수 있었던 근본 바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감사하는 삶이었습니다.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쳐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홍익인간 말 따라
나눔의 미덕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감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기 때문에
절대 상대방을 해칠 수가 없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만하기
때문에 살육이 없는 사회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쉼 없이 달리는데
초점을 맞추느라 선조들의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자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만족할 줄 아는 자이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자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자이다.” 어떻습니까?
감사의 위대함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을 보면
심장박동수를 가장 이상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긍정적 정서가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보통 성인의 심장박동수는
1분에 70번을 기준으로 미세하게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하는데요.
분노나 좌절감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매우 불규칙하게 변화하지만
삶에 있어서 감사한 일들에
생각을 집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심장박동수는
매우 규칙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편안한 휴식이나
심지어 수면 상태에 있을 때보다도
심장박동수의 변화주기를
더욱더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친다면
세상은 활력이 넘치고 보다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회사 임직원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에 실린
유명한 글을 한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젊은 시절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꿈꿨습니다.
나이가 들자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시야를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황혼이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마침내 세상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을...’
여기 이 문구가 전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변화면
주위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보다 주위의
변화를 먼저 원합니다.
나부터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나 자신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정과 일터가 변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내가 행복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일터가 행복하고,
일터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참 보기 좋은 순환고리이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