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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3대 건축가 중 한 명
혹시 프랑스 롱샹성당에 가보신 적이 있는지요? 건축가 김석철 선생은 그곳을 방문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롱샹은 눈이 부셨다. 감동이 내 온 전신을 물결치듯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건축적 감동을 넘어 창조에 대한 환희 같은 것이었다.” 롱샹 성당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 성당을 건축한 르 꼬르뷔지에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96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근대 3대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르 꼬르뷔지에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반역의 예술가였습니다. 르 꼬르뷔지에는 78년의 삶을 시종 타성과 상식, 편견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았습니다. 그의 반역의 역사는 그가 젊은 시절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기계와 연관 짓는 것에 사람들은 여간 불쾌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칭한 기계는 사실 기계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건축이 사람이 사는 집인데도 사람의 편리함보다는 전통과 장식을 중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산업사회의 상징인 자동차처럼 표준화되고, 편리한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획기적인 건축 이론
르 코르뷔지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집에서 안전하게 살고, 빛과 바람과 자연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보고, 그걸 저렴하게 실현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콘크리트와 기둥을 활용해 건축함으로써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는 획기적인 건축 이론을 창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혁신은 당시 기득권층에게 매도당했습니다. 1924년 그가 지은 어느 주택에 대해 시 의회는 자연을 거스르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모방을 금지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그의 반역의 삶은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란 고층 아파트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이재민들을 위해 지어진 337가구의 고층 빌딩이 그것인데, 오늘날 현대식 아파트의 효시라 불립니다. 건축이 장식의 동의어이던 시절, 콘크리트로 지어진 대규모 공동주택이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벽에 머리를 박게 하는 빈민굴이자 정신병을 일으키게 하는 돼지우리”라는 혹평이 쏟아졌고, 정부 관련 부처는 건축 과정에서 위생법을 어겼다고 철거 소송을 벌입니다. 요즘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녹지공간이 80%가 넘고, 평면 설계도 2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성이 있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겁니다. 그의 노력은 훗날에 가서야 재평가됩니다. 그는 수백만 서민의 거주지를 해결한 아파트를 창안해 집이 없는 이들의 삶을 바꾸었고, 도시 설계에서도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20세 기적 삶에 필요한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