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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최고 백미이자 내륙 속의 바다라 불리는 바이칼 호는 길이 640㎞, 평균 너비 48㎞, 전체 면적 3,1470㎢로 남한의 1/3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넓이는 세계 7위지만, 담수량으로는 세계 최대의 호수인데요. 최대 수심이 1,642m에 이르는 바이칼호의 담수량은 약 2,3000㎦로 미국 5 대호를 다 합친 것과 맞먹는 양이자 전 세계 담수의 1/5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광수와 박범신
이런 바이칼호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꼭 가고 싶은 곳 중에 하나로 꼽히는데요, 특히 많은 예술가, 문학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곤 합니다. 한국의 유명 소설가 중에서도 춘원 이광수와 '은교'의 저자 박범신이 바이칼을 다녀오고 또 바이칼에 대한 소설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두 작가가 바이칼에 간 이유는 다르지만 그들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바이칼에 간 이유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광수의 '유정'
먼저 춘원 이광수는 일본 유학 시절 톨스토이 문학과 사상에 심취하여 톨스토이 주의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문학의 길을 선택합니다.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에도 정규 과정에는 없는 톨스토이를 틈틈이 가르쳤고 그 해 11월 톨스토이가 죽자 추도회까지 열었지요. 그러나 학교가 기독교 재단으로 넘어가자 교회를 부정하는 톨스토이주의로 인해 이광수는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지인으로부터 미국에서 발행되는 '신한민보'의 주필 자리를 추천받아 미국으로 향하는데요. 당시에는 유럽을 거쳐야만 미국으로 갈 수 있었기에 그는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치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치타에 있을 때 바이칼호를 가게 된 것인데요. 이 바이칼여행에서 얻은 영감 덕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유정'이지요. 한편 탐미주의적인 소설가 박범신이 바이칼 호수에 간 것은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3년이 지난 1996년 여름이었는데요. 그때 읽고 있던 <삼성기(三聖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책에 따르면 역사 이전 한민족의 원조인 천제한 님(환인)이 '천해(天海) 동방 파 나류산 밑에 세운 이상적인 나라'가 있는데요, 중종 시대 이맥(李陌)의 <환국본기(桓國本紀)>에서 이 나라는'순리대로 잘 조화되어... 어려운 자를 일으키고 약자를 구제하여 어긋나는 자 하나도 없었다'라고 묘사된다고 합니다. 박범신 작가는 바로 이 천해가 북해를 말하고 북해란 바이칼호를 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최초로 이상적인 나라를 세웠던 그곳, 바이칼로 떠났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그 곳을 다녀온 후 만들어진 소설이 '주름'입니다. 그렇다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떨까요? 우선 <유정>의 주인공 최석은 고아가 된 친구의 딸 남정임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몰염치한 인간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향한 곳이 바이칼 호수인데요. 최석이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쓴 마지막 편지에는 왜 하필 바이칼인지가 잘 나옵니다.'나는 이 얼음 위로 걸어서 저 푸른 물 있는 곳까지 가고 싶은 유혹을 금할 수 없소. 더구나 이 편지도 다 쓰고 나니 내가 이 세상에서 할 마지막 일까지 다 한 것 같소. 희미한 소원을 말하면 눈 덮인 시베리아의 인적 없는 삼림지대로 한정 없이 헤매다가 기운 진하는 곳에서 이 목숨을 마치고 싶소' 바이칼 호수는 바로 그가 죽기 위해 찾은 곳입니다. 그가 바이칼 호수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깊은 병에 걸려 있었고 뒤늦게 그를 찾아온 정임은 그를 그곳에 묻고 자신도 그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