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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상업용 게임기를 만든 '놀란 부쉬넬'

스티브 잡스의 첫 번째 직장은 어디였을까요? 그 회사의 CEO는 그를 어떻게 보았기에 독립하려는 그에게 투자자들을 소개해 주었을까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지분 1/3을 제의할 정도로 신뢰하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게임산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놀란 부쉬넬입니다. 최초의 상업용 게임기를 만들어 떼돈을 벌고 24개의 회사를 설립한 실리콘밸리의 괴짜이자, 뉴스위크 선정 ‘세상을 바꾼 50인’에 뽑히기도 한 아타리의 창업자 놀란 부쉬넬, 오늘은 그의 게임 같은 삶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놀란 부쉬넬의 게임 같은 삶

1943년 미국의 유타주에서 태어난 놀란 부쉬넬은 십 대 무렵부터 ‘햄 라디오’라고 불리는 아마추어 무선 마니아였습니다. 그 취미를 따라 입학한 유타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그는 MIT의 학생들이 만든 ‘스페이스 워’란 컴퓨터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원래 체스와 트럼프 같은 게임을 좋아했던 그는 우주선 두 대가 펼치는 단순한 슈팅게임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학업을 제쳐두고 차고에서 최초의 상업용 게임기인 '컴퓨터 스페이스'를 개발합니다. 게임 자체는 다를 바 없었지만 동전을 넣고 한다는 점과, 고가의 메인프레임 컴퓨터 대신 비교적 작고 싼 기계에서 돌아간다는 것이 차별 점이었습니다. 조작이 어려웠던 이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부쉬넬의 첫 번째 사업이었고, 여기서 그는 ‘배우기는 쉽게, 마스터하기는 어렵게’ 게임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이른바 ‘부쉬넬의 법칙’을 정립합니다. 1972년, 비디오 기기 회사를 다니던 부쉬넬은 동료 대브니와 함께 다시금 컴퓨터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아타리’를 설립합니다. 회사의 이름은 그가 좋아하던 게임인 바둑의 용어에서 따왔는데요. 그들은 앨런 알콘이라는 개발자를 영입하고 당시 실험적으로 제작되던 게임들을 참고하여 2인용 게임인 '퐁'을 만들었습니다. 다이얼을 돌려서 공을 받아치는 일종의 탁구게임인 퐁은 술집 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었는데, 설치하자마자 고장이 났다고 해서 가 보면 동전이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몇 달 만에 만 대 가까이 팔린 퐁은 그러나 새로운 게임기 시장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부쉬넬은 퐁의 성공 이후 TV와 연결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저가의 가정용 퐁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974년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판매된 가정용 퐁은 다음 해까지 15만대라는 판매수량을 기록했습니다. 그 뒤로도 4인용 퐁, 혼자서 하는 벽돌깨기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면서 아타리는 많은 엔지니어들을 새로 채용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부쉬넬의 능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회사의 로비를 게임 아케이드로 꾸며'즐기면서 돈을 버는 곳'이라고 적어 놓고, 금요일에는 맥주파티를 열어 직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창조적인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학벌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일을 즐길 줄 아는 열정'을 우선시하는 부쉬넬의 인재 철학이 담겨 있었는데요. 직원들의 취미생활을 장려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아타리는 엔지니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해 숨은 실력자들이 모여들면서 아타리는 명실 공히 최고의 게임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던 1976년, 부쉬넬은 아타리를 워너 커뮤니케이션에 매각하고 2년 후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옮기기 위해 회사를 떠나는데요. 그가 세 번째로 창업한 회사는 엉뚱하게도 음식점 체인이었습니다. 피자를 먹으면서 비디오 게임도 할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요, 아타리 게임의 유통 창구 역할도 겸하고 있었죠.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부쉬넬의 피자타임 극장은 일반적인 피자헛 매장에 비해 다섯 배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한편 미래의 컴퓨터 기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던 그는 캐털리스트 테크놀로지 벤처캐피털을 설립하여 혁신적인 회사들을 육성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이택(Etak)은 디지털 지도를 내장한 미국 최초의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만들었고, 이 지도는 오늘날 구글 맵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부쉬넬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

1983년은 부쉬넬의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기였습니다. 그가 떠난 이후로도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아타리는 비디오 게임 산업이 과열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는데요. '아타리 쇼크'라고도 불리는 시장 붕괴로 인해 아타리는 결국 분할 매각되고 미국의 게임기 시장은 긴 침체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같은 시기, 음식점 사업도 지나친 사업 확장과 시장의 포화가 겹쳐 어려움을 겪다가 이듬해 파산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여파로 부쉬넬 역시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망한 스타트업을 찾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빚을 자신의 재산과 투자한 회사의 수익으로 갚아나가면서도 2000년에는 터치스크린을 갖춘 인터넷 게임기를 식당에 도입하는 등 여러 사업을 펼치며 그는 재기에 성공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놀란 부쉬넬. 그가 지금까지 창업한 회사만도 무려 24개에 달하는데요. 자신을 괴짜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부쉬넬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성공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행동에 옮겨라. 일부는 실패해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재빨리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아이디어는 사업의 궤도 자체를 바꿔 놓을 수 있고 당신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도약시킨다.”라고 말이죠. 그는 71세가 된 현재까지도 ‘브레인 러시’란 회사를 설립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을 추구했던 부쉬넬의 삶은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고 있지만, 무질서와 우연을 포용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모험심이야말로 실리콘밸리의 정신이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