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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8년,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카르타고와 로마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릅니다. 고대 최고의 전략가로 알려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겨울철의 혹독한 날씨에 에스파냐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 북부에 위치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공격하는데요. 허를 찔린 로마는 초기 전투에서 계속 패하고, 카르타고는 이탈리아 반도 중부까지 진격합니다. 한니발은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을 떠올리며 로마를 쉽게 정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이유는 알렉산더 대왕이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복 전쟁 초기의 승리를 발판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는 도시국가들의 느슨한 동맹을 분열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도 페르시아와 같이 도시국가들의 동맹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로마 정복도 쉬울 거라고 예상한 거죠. 하지만 한니발의 기대와 달리 로마는 페르시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로마의 시민권 제도에 있었습니다. 로마에 정복되어 로마에 편입된 도시국가의 시민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로마 시민이 되어 로마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로마를 구성하는 도시국가들의 동맹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도시국가들의 굳건한 동맹으로 로마는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갑자기 과거 이야기로 포스팅을 시작한 것은 로마의 승리가 현대 기업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들은 과거에 로마가 그랬듯, 시장의 이해관계자들과 혁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e북 리더기 하면 아마존의 킨들을 떠올리지만, 소니는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킨들보다 더 나은 e북 리더기, 리브리를 아마존의 킨들에 앞서 2003년에 출시합니다. 하지만 리브리를 접한 출판업체들은 혁신적인 제품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출판업계에 대한 지배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출판업체들은 소니의 위세에 눌려 앞에서는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했지만 뒤에서는 리브리의 성공을 방해하게 되는데요. 결국 리브리는 콘텐츠 확보에 실패하고 시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시장에서도 조직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을 외치는 순간, 주위는 적으로 둘러싸입니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혁신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혁신의 성과를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는 보상 체계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969년, 냉전 시대에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 연구원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인터넷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세상에 소개된 지 40년이 지난 2009년, 미 국방부는 미국 전역에 직경 2.5미터의 빨간 풍선 10개를 띄워놓고 10개의 풍선을 찾아내는 이에게 4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콘테스트를 개최합니다. 미 국방부는 그들이 개발한 인터넷이 세상을 얼마만큼 촘촘한 네트워크로 묶어 놓았는지 궁금했던 거죠. 콘테스트를 시작하기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대략 9일 정도면 풍선의 위치 10개를 찾아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뜻밖에도 콘테스트가 시작되고 9시간도 되지 않아 한 팀이 풍선 10개를 찾아냅니다.
바로 MIT 공대 학생들이었는데요. 그들은 어떻게 한 걸까요? MIT 공대 학생들은 수학의 극한 법칙을 이용한 가지치기식 상금 보상 체계를 설계하고 SNS를 이용해 홍보합니다. 가지치기식 상금 보상 체계는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에 위치한 풍선을 A가 찾았다면 A는 사례로 2000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A가 이 풍선을 찾는 데 B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 대가로 B 또한 A가 받은 상금의 절반인 1000달러를 받고요. B 또한 A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C의 도움을 받았다면, C는 B가 받는 상금의 절반인 500달러를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A가 시카고에 위치한 풍선을 찾는 데 B와 C가 도움을 주었고, 이들이 받는 상금은 A가 2000달러, B가 1000달러, C가 500달러, 총 3500달러죠. 하나의 풍선을 찾는 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어도 풍선 한 개당 지불되는 총상금은 4000달러를 넘지 않겠죠. 따라서 풍선 10개를 찾는 데 지불되는 총상금도 4만 달러를 넘지 않을 거고요. 그래서 MIT 공대 팀은 풍선 10개를 찾는 데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었던 겁니다.
같은 콘테스트에서 풍선 9개를 찾아 안타깝게 2위를 한 팀이 있었는데요. 조지아공대 학생들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그들도 MIT 공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SNS를 활용했지만, 방법은 달랐는데요. 상금 4만 달러를 받으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겠다며 사람들의 이타심에 호소한 것이죠.
방금 소개한 빨간 풍선 찾기 사례는 기업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요란한 구호를 통해 구성원의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이 기여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기제가 만들어질 때 혁신 활동 참여에 대한 동기가 지속적으로 부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여자가 기여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정밀한 보상 제도의 설계와 운영은 기업에게 쉽지 않은 과제겠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아무리 대단한 혁신이라도 이 부분이 충분히 고민되지 않으면, 시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