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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유기업 이야기

biumgonggan 2021. 10. 17. 10:31

최근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이 발표되었는데요. 국가별로 보면, 물론 미국이 132개로 가장 많았지만, 중국도 그에 못지않은 115개나 됩니다. 특히, 매출액 기준 상위 5개 기업 중 중국기업이 3개나 되는데요. 2위 국가전망, 3위 시노펙, 4위 페트로차이나. 순이익 기준으로 보면 1위 애플을 제외하면 2-5위가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인데요. 이들 기업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국유기업이란 점인데요. 국유기업이라 하면 정부가 소유한 기업이라는 뜻인데, 중국에서 정부는 공산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사실상 공산당 소유 기업들이죠. 115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90개가 국유기업입니다.

 

이들의 연간 순이익은 4,000억 달러가 넘고요. 중국 내 전체 국유기업의 이익은 1조 달러에 달합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공산당에 들어오는 거죠. 하지만, 과거와 달리 중국 기업들은 수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기업화되어 있고, 외국자본이 유입되는 등 글로벌화되어 있어서 당이 통제하기 만만치 않을 텐데요. 공산당은 어떻게 이들을 통제할까요? 계획경제 시기에 중앙 정부가 완벽히 장악했던 중국 국영기업들은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의 분권화 방침에 따라 권한이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되는데요. 그 결과 전국에 개발 붐이 일면 서중 국경제는 1980년대에 고도성장을 하죠. 하지만 그 부작용도 컸습니다. 인사권을 장악한 지방정부에 의해 지방 은행들은 지방 관료들의 ATM기로 전락합니다. 이에 따라 부정부패와 과잉투자가 일상화되면서 기업 경영은 악화되고 은행 부실은 눈덩이처럼 증가했고요. 여기에 동아시아 금융위기까지 발발하자 1990년대 중국 경제는 엉망이 됩니다.

 

이때 공산당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요. 조치의 핵심은 지방에 이양했던 권한을 모조리 회수하는 거였죠. 이를 위해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는 1998년 당 중앙에 중앙금융공작위원회를 만드는데요. 금융공작위원회는 전국의 모든 국유기업과 은행의 경영진을 선임할 권한을 가졌고요. 거기다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금리, 환율, 통화정책까지 담당했습니다. 순식간에 당이 전국의 기업과 금융을 모조리 장악한 건데요. 지방 은행이나 국유기업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물론 금융공작위원회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달랑 당 중앙의 통지 문건 한 장으로 조직되었지만 중국에서 그런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죠.

 

다행히 국유기업은 1990년대 말 금융공작위원회가 주도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극적으로 회생하고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는데요. 국유기업의 성장은 당에게 엄청난 혜택을 줍니다. 물론 국유기업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당의 소유가 되고요. 이로 인해 중앙의 재정 적자 부담은 없어졌고 국유 은행들의 자금 수급도 원활해졌죠.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공산당은 금융공작위원회를 조용히 해체합니다. 하지만, 금융공작위원회의 기능은 주요 기관 내의 당위원 회로 이관되어 공산당의 지배라는 기본 틀이 바뀌진 않습니다. 예컨대 중앙은행인 중국 인민은행의 핵심 권한은 경영진이 아니라 인민은행 공산당위원회가 행사하는 건데요. 국유기업들도 사내 당위원회를 통해 당의 지배를 받게 되죠.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WTO 가입 이후 국유기업들이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화하면서 당위원회를 통한 기업 지배가 도전을 받게 된 건데요. 국유기업 이사회나 경영자와 당이 충돌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2005년 시노펙은 세계 유가상승에도 공산당이 국내 휘발유 판매가 인상을 거부하자 강하게 반발했는데요. CEO 천퉁하이는 남쪽에 몇 개의 대형 정유공장 가동을 중단시켜버렸습니다. 상하이 일대에 극심한 유류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당은 시노펙의 적자분을 보조금으로 메워줬는데요. 일면 당이 시노펙에 패배한 걸로 보였죠. 하지만 얼마 안가 천퉁하이는 부패 혐의로 구속됩니다. 결국 인사권을 거머쥐고 있는 당을 이길 수 없었던 거죠.

 

중간에 있는 경영자가 해외 M&A 같은 큰 거래를 할 때 이사회와 당의 요구를 잘 조율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2005년 중국 해양 석유총공사는 미국의 에너지기업 UNICAL을 230억 달러에 매수하려고 했는데요. 당시 사장이었던 푸청위는 사내 당위원 회로부터 승인을 받고 진행했지만 이사회의 동의는 구하지 않아 외국인이 포함된 이사들이 반발하면서 거래가 무산되었습니다. 회사의 주인인 이사회보다 법적 근거도 없는 당위원회를 먼저 챙기면서 발생한 해프닝이었죠. 하지만 충성심을 인정받은 푸청위는 해임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승승장구합니다.

 

주요 국유기업 CEO의 책상에는 보통 대형 모니터와 붉은색 전화기가 놓여 있는데요. 대형 모니터는 주가 동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요 붉은색 전화기는 당 중앙과의 핫 라인입니다. 국유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조직이면서도 여전히 당의 지배를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일 텐데요. 국영기업 경영자들은 회사의 이익과 당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공산당은 국유기업들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10여 년 만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조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궈수칭 전 중국 건설은행장은 "현대 중국에서 기업이 사회주의를 성공시키는 건 주주들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바 있는데요. 물론 기업의 최대 주주는 공산당이죠. 공산당은 거대해진 중국 경제를 이처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도전은 계속되겠지만, 지금까지는 공산당의 승리인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