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좋아하는 색깔

예전에 한 교수가 중국 학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는데요. 딴에는 한국적 멋을 부린다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또는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그걸 본 중국인들이 기겁을 하더랍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불길한 색깔은 처음 봤다고 말이죠. 물론 중국에서 축의금을 흰 봉투에 검은 글씨로 써서 주는 것은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는 의미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발표 자료야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죠. 이처럼 중국인들의 색깔에 대한 호불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깊습니다.

 

흰색은 중국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흰색을 아주 싫어하는데요. 한자로 '백'자는 ‘희다’는 뜻 외에 보상이 없다거나 일이 잘못되었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백색 옷은 신분이 낮은 평민이나 천민, 죄수들이 입었기 때문에 ‘백의’라 하면 비천한 사람을 의미하구요. ‘백옥’ 역시 하얀색 집이 아니라 관직 없는 비천한 지위를 뜻합니다. 한편, 러시아 혁명 당시 ‘흰색’이 반동을 상징하면서 중국에서도 ‘흰색’은 ‘붉은색’과 상반되는 정치적 반동을 의미하는데요. 과거 국민당 정권을 백색 정권이라 부르고, 사상이 나쁜 사람을 백전이라고 비판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흰색 다음으로 중국인들이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색깔은 검은색인데요. 검은색은 흰색과 함께 죽음을 의미하고 귀신을 불러들이는 색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검은색은 고대 형벌 중 가장 혹독한 형벌의 하나인 '묵형'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문화 대혁명 중에 '흑'은 반동을 상징하여 당시 타도되거나 비판을 받을 대상은 '흑류'라 하여 반혁명, 반동세력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흑색은 불법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폭력조직을 흑사회라 부르고, 불법영업택시를 흑차라고 하는 것도 검은색에 대한 이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색을 좋아할까요? 보통 황색, 빨간색 등을 떠올리실 텐데요. 여기서 중국인이 좋아하는 색깔을 서열별로 보면 황색, 자주색, 빨간색, 녹색, 파란색 순서 정도입니다. 실제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중국인은 위 순서대로 신분에 따라 옷 색깔을 달리 입었는데요 중국 전통사회에서 옷의 색깔은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귀색과 천 색이라는 명확한 구분 아래에서 현재까지 중국인들은 개인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위의 서열을 인정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황색은 지존을 상징하는 색으로 황제만이 쓸 수 있었습니다.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황화 주변의 황토고원을 의미하는 존귀한 색이기도 했는데요. 황금색 제품은 웃돈을 주고 구입할 정도로 중국인의 황금색 사랑은 대단합니다. 자주색과 빨간색은 제후나 귀족들이 쓸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빨간색에 대한 애호는 귀족 사회에서 점차 민간에 까지 퍼져서 이제는 중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색이 되었는데요. 현대 중국어에서 '붉을 홍'자는 경사, 성공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결혼식에는 신부 예복, 테이블보, 부조금 봉투, 신방 등이 온통 붉은색이고요, 어떤 사람이 중책을 맡게 되면 '홍인'이라고 하고, 연여계의 인기스타는 '홍성'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붉은색은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지요.

 

청색과 녹색은 딱히 좋은 색이다, 나쁜 색이다 얘기하기 좀 애매한데요. 굳이 얘기하자면 과거에는 안 좋은 색이었지만 지금은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색은 당나라 때 8-9품의 낮은 직급 관리들의 복장에 쓰인 이래 천한 신분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고 녹색은 관리가 범죄를 저지르면 녹색 두건이나 모자를 쓰게 하는 등 치욕을 상징하는 색이었는데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요. 녹색과 청색이 가지고 있는 친환경과 생명, 건강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중국에도 보편화되어 녹색과 청색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색깔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만큼 중국 사업에서도 색깔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우리 기업 제품 중에서도 빨간색이나 황금색을 잘 활용하여 중국에서 성공한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깔만 계속 따라가는 것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는데요. 예컨대 청색은 중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이었지만, 우리 첨단기업들이 중국에서 청색을 브랜드나 제품에 많이 활용하면서 지금은 많은 중국인들에게도 파란색은 하이테크를 의미하는 색깔로 각인되었고요. 지금은 다수의 중국기업들도 자사 제품 및 브랜드에 파란색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춘다고 맹목적으로 붉은색이나 황금색만을 활용하면 자칫 중국인들에게 중국산 제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데요. 중국인들의 색깔 선호에도 어느 정도 호응하면서 해외 선진기업이라는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유지할 수 있는 색깔 마케팅! 중국 사업 성공의 또 다른 핵심 포인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